- 자체적인 설정이 붙은 캐릭터가 있습니다.
오후에는 역시 이전까지랑 비슷하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보슬보슬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가끔 모습을 비춰 놀라움을 선사하던 벌레들도 보이지 않았고 멀쩡한 바닥에서 사람들이 미끄러지곤 했다.
재유는 지금 체육관 바닥에 대자로 엎어져 있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근육이나 인대가 상한 건 아니었다. 오늘따라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고 온몸이 흐느적거리는 것 같기는 했다. 몸 상태가 나쁠 이유도 없어서 기분 탓으로 치부했는데, 꼬마가 놓쳐버린 아이스크림콘처럼 철퍼덕 넘어질 줄이야. 그것도 다른 학교 애들까지 보는 앞에서.
상호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재유 옆에 엎드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와 꽂혀 얼굴 옆면이 근질거렸다.
“니 뭐하나?”
희찬이가 의아해했다. 상호가 고개만 들어 대꾸했다.
“재유햄이 쪽팔려하는 것 같아가. 이럴 때는 쪽팔림을 같이 나눠서 져야 하는 기다.”
“아. 그래.”
희찬이는 상호가 되먹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자 곧바로 신경을 껐다. 하지만 다은은 거기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님! 일어나셈. 님은 지상의 자존심임.”
다은은 한술 더 떠서 재유의 머리맡에서 박수치고 바닥을 두들기면서 그를 세심하게 살폈다. 빙□ 새□들…. 태성이 다은과 상호에게 이보다 더 한심할 수 없다는 눈초리를 던졌다. 이 웬수 같은 자식들. 한 놈은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노골적으로 관찰하고 앉아 있고 다른 놈은 거기 동조하면서 불길에 장작을 던져넣고 있었다. 자식놈들 키워봤자라 외치는 어르신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갔다. 후배 자식들 키워 봤자 선배 놀려먹기나 하지!
다행히도 구세주가 나타났다. 준수가 다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상호는 눈치가 빨라서 엉덩이나 허리를 걷어차이기 전에 몸을 굴려 일어났다.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준수가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재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친 데 없으면 연습은 마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준수는 그게 불만스러운지 재유를 째려봤다. 구겨진 미간에 심통이 가득했다.
“쉬지 그래? 그러다가 진짜 다쳐.”
“우와.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진재유가 니들이랑 같냐?”
“아. 예이~.”
태성은 저렇게 그냥 넘어갈 걸 꼭 까불어서 준수의 성질을 돋웠다. 준수는 욕설을 쏘아붙이고 휙 이현성 감독을 쳐다봤다. 부릅뜬 두 눈은 언어적 표현 없이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이현성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준수. 후배를 발로 차면 안 된다.”
“아니 근데….”
“그리고 재유 니는 오늘 그만하고 쉬어라.”
“그래. 감독님도 저렇게 말씀하시잖아.”
준수는 대거리하려다 이현성 감독을 거들었다. 그는 생선 문 고양이처럼 흡족해 보였다. 근 몇 년간 준수가 이렇게 얄미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재유는 다급히 변명했다.
“저 진짜 괜찮아요. 발이 좀 꼬인 거예요.”
이현성 감독은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재유를 보고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재유는 자꾸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오르는 게 실성한 사람을 연상케 했다. 이놈은 자기가 귀에 꽃 꽂고 다니면 어울릴 상태라는 걸 알까? 그는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성격상 완강히 거부하는데도 지시에 따르게 하려면 적절한 명분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좋은 핑계가 있었다.
“이휘성이 아픈 건 알고 있지? 금마가 지금 혼자 있지 않나. 니가 그놈 지켜보면서 챙겨줄 수 있나?”
“아. 네.”
재유는 빠르게 납득했다. 이휘성은 오후가 되고 비가 거세지자, 상태가 나빠졌다. 전처럼 발작을 일으키는 지경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상태는 거기서 더 나을 게 하등 없었다. 그는 결국 버티다가 지국민과 전영중에게 한 팔씩 붙들린 채 끌려 나갔다.
원중고 감독과 이야기가 끝났는지 이현성이 열쇠를 재유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문 잠겨있으면 열쇠로 열고 들어가라.”
“네.”
“혹시나 해서 당부하는데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있어라.”
“가만히 있을게요.”
어른이라 그런가. 눈치가 기가 막혔다. 이현성 감독은 재유가 고분고분히 대답하는 것까지 탐탁잖아했다. 재유는 책 잡히기 전에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원중고 숙소방은 안에서 잠겨있었다. 그는 노크 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휘성은 저녁만 되면 제정신 유지를 못 하던데 지금도 맨정신으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자고 있지 않을까? 되도록 아픈 애 쉬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자, 그 즉시 흰 물체가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둔중한 충격이 두개골을 울렸고, 시야가 검게 암전됐다.
요 며칠 새 질리도록 본 천장이 다시 보였다. 머리는 띵하고 꼬리뼈가 아팠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
재유는 소리 들리는 쪽으로 멍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휘성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허리가 오목하게 들어간 베개가 놓여있었다.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기 위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두통을 가라앉혔다.
“그러니까.”
재유는 베개를 가리켰다.
“저걸로 내를 팬 기가?”
“아니. 던졌어. 너무 놀라서…. 그러게 누가 노크도 안 하고 문 열래?”
“하…….”
재유는 분노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을 골로 보낼 뻔 해놓고 남 탓을 해? 그 몸집으로 물건을 던진다는 건 그게 돌멩이가 됐든 베개가 됐든 순두부가 됐든 사람 잡겠다는 거다. 재유는 괴고 있던 베개를 꽉 붙들었다. 이휘성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멀어지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진짜 미안해. 이상한 게 장난치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베개 내려놓지 않을래?”
재유는 베개 모서리를 단단히 쥐었다. 어차피 여기는 좁은 방이고 이휘성은 방 밖으로 나갈 게 아니라면 도망칠 곳이 없었다. 베개 잡거나 뺏으면 그날로 육탄전 벌어지는 거고. 체급 차가 극명하지 않냐고? 2미터짜리가 30센티 작은 사람을 있는 힘껏 쳤는데 양심이 있으면 맞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창문이 눈에 띄었다. 덮는 용도의 얇은 이불을 커튼마냥 청테이프로 붙여 창을 가려 놓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게, 병적으로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재유는 그제야 이휘성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의 눈 밑에는 그늘이 시꺼멓게 내려앉았고 숨 차는 것처럼 호흡이 얕고 다소 빨랐다. 치솟던 화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아프고 불안한 애 못살게 괴롭혀 봤자 뭐 할 건가. 재유는 창을 가리켰다.
“밖에 그게 꼬나보나?”
이휘성은 난데없는 대명사에 어리둥절했지만, 재유가 뭘 칭하는지 빠르게 알아차렸다.
“…어. 계속. 쭉. 쫓아다니면서 사탕발림을 늘어놓다가 협박하길 반복하고 있어.”
“그래서 상태가 안 좋았구먼? 와 니를 유독 못살게 구는지.”
“이유는 여러 가지지. 저건 신이나 다름없으니 섬김받고 싶어 하기도 하고, 천성이 사악해서기도 하지.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그냥 내가 제일 만만하고 반응 좋아서야. 너도 누굴 괴롭힐 때 너를 무시하는 사람보다 울거나 화내면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더 건드릴 맛 나잖아?”
이휘성이 싱긋 웃었다. 산뜻해서 서늘한 미소였다.
“근데 니는 그런 게 문 여는데 베개로 뚜들겨 패려 하나?”
“혹시 몰라서 베개 안에 부적 넣어놨어.”
이휘성이 베갯잇 지퍼를 내리더니 꾸깃한 부적 두어 장을 꺼냈다. 저건 대체 언제 집어넣은 걸까? 재유는 그제야 본론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니 짐 챙겨온 거 있지 않나? 그거 꺼내봐라.”
“아. 맞다.”
이휘성이 자신의 짐을 모아둔 자리에서 쑥색 배낭을 가져왔다. 촌스러운 색과 바스락거리는 재질이 그들의 부모 또래가 쓸 법한 등산용 가방을 연상시켰다.
재유는 배낭 지퍼를 열었다. 지퍼백에 든 소금과 부적 뭉치가 보였다. 그는 행복에 겨워 가방을 끌어안았다. 이게 정말 필요했다. 가방 안에서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 휘적거려 잡히는 걸 끄집어냈다. 삼지창이었다. 술이 달린 걸 보니 지국민이 사용한 적 있는 바로 그 삼지창이었다.
삼지창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손잡이 길이에 비해 날이 길어 땅딸막하고 투박했다. 그 대신 튼튼해 보였다. 날은 세게 쥐지 않는 한 살갗이 베이지 않을 정도로 무뎠다.
이휘성은 삼지창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재유를 희한하게 쳐다봤다.
“그게 그렇게 신기해?”
“어. 내는 이런 거 처음 본다.”
“하긴. 보통은 살면서 볼 일이 없지.”
“이거 용도가 뭐고?”
“들고 춤추거나, 굿할 때 제물을 꽂아서 세울 때 써. 이건 사이즈 보니까 돼지머리 같은 거 꽂는 용도 같다.”
“이게 설 수 있다고?”
“그러니까 신의 행사인 거지. 괜히 신칼과 함께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겠어? …라고 말하긴 하는데, 다 기술이야. 균형 잘 잡으면 된댔어.”
재유는 호기심이 동해 바닥에 삼지창을 세워 보았다. 삼지창은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술도 달려있고 날도 커서 균형을 잡아보려 해도 손을 떼면 기우뚱거리며 쓰러졌다. 귀신이 거들어 주든, 섬세한 감각이든 이걸 똑바로 세울 수 있는 건 대단한 능력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위화감이 들었다. 그는 다시 삼지창을 관찰했다. 관리를 잘 받아 반질거리는 나무 손잡이. 진중한 묵빛 칼날. 나는 일반인이 쥘 수 없는 귀물입네, 하는 티가 났다.
가방 속 다른 물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소금은 A4지 사이즈 정도의 지퍼백 두 개에 꽉 차게 들어있다. 부적도 뭉치로 들어있었는데, 글씨가 장마다 미묘하게 다른 게 일일이 쓴 것 같았다. 소금이야 집에 있는 거 퍼다 줄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부적은 이만한 양을 준비하려면 엄청난 정성이 들었으리라.
이 물품들을 ‘적당량’ 챙겨왔다면, 많이 양보해서 삼지창만 없었다면 평소에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숫제 전쟁터 나가는 양 잔뜩 챙겨오지 않았는가?
재유는 끼고 있던 가방을 옆으로 밀어놨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이리 와 봐라.”
이휘성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재유 앞에 앉았다. 재유는 애 꾸중하는 훈장처럼 심각한 투로 물었다.
“니는 이 정도 되는 물품들을 합숙가는 데 와 들고 온 기가? 번거로웠을 것 같은데.”
“내가 챙긴 게 아니야. 이모가 가방째로 들려주셨어.”
“그분이 무당이신가?”
“어. 어디 갈 때 이것저것 챙겨주실 때가 있어.”
“보통 이 정도 싸주시나?”
“아니. 이렇게 많이 뭘 주신 건 이번이 처음이야. 삼지창도 그렇고.”
재유는 얼굴을 연거푸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회피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이 정도로 짐을 싸줬으면 공포영화에서 앞으로 갈 저 수상한 저택에서 악마가 튀어나올 거라고 자막으로 스포일러하는 수준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휘성은 반복을 되풀이하면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지국민 때처럼 팀원 중 적당한 사람에게 대신 시킬 수도 있는 거니까.
재유는 심호흡하며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그러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지금 같은 날을 여섯 번 반복하고 있는데 니는 한두 번 빼고는 딱히 사태를 수습해 보려 한 적이 없다. 와 그랬는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나?”
“무슨 의미야?”
“봐라. 이렇게 단단히 채비해서 보내면 ‘아, 내가 가는 데 안 좋은 일이 터지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나? 게다가 니 저녁만 되면 아프기까지 했다.”
“그냥 눈치 못 챈 걸걸? 설마설마하다가 사람 잡힌 거겠지.”
이휘성은 간단명료하게 결론지었다. 재유는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하고 그의 얼굴만 노려봤다. 가슴 한복판에 돌멩이가 단단히 낀 것처럼 답답했다. 이게 화병이구나. 그는 가슴을 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활짝 웃으며 이휘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머리보다 몸 써 버릇하는 놈들이 제대로 대응할 거라 기대한 자신이 멍청이지.
“미치광이 망상 들어준다고 고생 많았다.”
“뭔 소리야 갑자기?”
“내가 요즘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 니가 이해해 주라.”
“갑자기 뭔 소리냐고.”
“내는 내 나름대로 환상을 실천할 테니 니도 잘 지내라.”
“가방 내려놔. 이모가 그거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하신 줄 알아?”
재유가 나가려고 하자 이휘성은 그가 멘 가방을 잡아당겼다. 재유는 참지 못하고 목청 터지게 악쓰면서 이휘성에게 삿대질했다. 소리 지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아아아아악! 이 얼간아! 짐 내용물이랑 니 아픈 거 보면 견적이 안 나오나? 어떻게 그걸 눈치 한 번 제대로 못 채나? 니가 사람이가? 니 어깨 가운데 달린 건 장식이지! 사람 잡을 선무당 새□야!”
“선무당이라니! 선무당은 적어도 신 모시는 사람이지. 나는 들릴 신도 없는 개허접이고!”
이휘성은 참 당당하게 대꾸했다. 재유는 기가 차서 언쟁을 이어갈 의지를 상실했다. 그는 성의 없이 던진 짚 인형처럼 바닥에 모로 엎어졌다.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나왔다. 저 모자란 □끼. 그나마 상황파악 되는 놈 수준이 저따위라니. 가망이 없었다. 뇌로 갈 영양분이 키로 갔나? 승대는 키 커도 잔머리가 기막히게 돌아갔는데. 갑자기 승대가 보고 싶어졌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래야 할 텐데. 그라도 여기 없어서 다행이었다.
“어디 아파?”
이휘성이 재유를 흔들었다. 반응이 없자 이휘성은 낑낑거리면서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고 들어 올렸다. 그는 재유를 잘 세웠다. 하지만 손을 떼자마자 균형 못 잡은 볼펜처럼 픽 쓰러져서 황급히 도로 붙잡아야 했다.
이휘성은 재유를 엎어놓고 그의 머리맡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 내가 일 년에 이런 사건을 몇 번 겪는 줄 알아?”
재유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알 바인가?
“굵직한 건만 따지면 서너 달에 한 번 정도야. 자잘한 사건 사고야 늘 있고. 너는 평생 이러고 살았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을 수 있어? 그건 운동선수에게 몸의 통증 변화로 오늘 부상을 입을지, 안 입을지 알아맞혀 보라는 거랑 비슷해. ‘아, 오늘은 운동 나가면 안 되겠다’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 때도 있겠지. 하지만 늘 그럴까? 그런 느낌이 들어도 늘 빠질 수 있을까?
“아니지. 보통은 못 빠지지.”
“그런 거야. 그저 늘 슬리브를 차고, 되도록 관절에 무리 가는 일 피하고, 몸 잘 풀면서 오늘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어. 그래도 언젠가 부상은 입지. 그게 오늘이었을 뿐이야. 이건 뜬금없이 심장마비 오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게 인생 아니겠어?
여긴 유독 기분 나쁜 곳이야. 너야 하나도 못 느끼니 밤마다 두 발 뻗고 잘 잤겠지만, 나는 이런 데 취약해서 컨디션에 곧잘 영향을 받아. 그래서 특별히 더 아파도 이게 여태 쌓인 게 터진 건지,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그렇구나.”
재유는 휘성의 평가를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에서 경험은 있는 머저리로 수정했다. 사정은 알겠다. 그런데 삼지창까지 챙겨줘서 의아하게 여겨놓고 생각이 거기서 발전을 안 했다는 괘씸죄가 너무 컸다.
“좀 영혼을 담아서 대답하지? 생각해 보니까 열받네? 내가 눈치 못 챈 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냐? 애초에 네가 사고만 안 쳤으면 이럴 일도 없었, 컥.”
이휘성은 재유를 달래다 울컥해서 짜증 내다 목이 막혔는지 컥컥거렸다. 사례가 심하게 들렸는지 허파를 뱉는 듯한 기침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얼마나 호흡을 가다듬었을까. 메고 있던 가방의 지퍼가 열리는 게 느껴졌다.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곧 멎었고, 뭔가가 바닥에 스치더니 그의 이마를 건드렸다. 노란색 종이. 부적 뭉치였다.
“깨 있어? 그거 세 묶음으로 나눠봐.”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쉰 목소리가 빗방울이 땅과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방에 음산함을 더했다. 재유는 엎드린 상태 그대로 고개만 들었다. 이휘성은 구부정하게 앉은 채 손바닥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폐에 공기를 가득 밀어넣으려는 것처럼 등이 과장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니 괘안나?”
“안 괜찮아. 4쿼터 내내 런앤건으로 코트 뛰어다니다가 바로 다음 경기 나가는 기분이야.”
이휘성이 고개를 들었다. 눈은 실핏줄이 터져 흰자가 분홍빛이었고 안색은 찬물에 담가 핏물 뺀 고깃덩어리처럼 혈색이 없었다. 시시각각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신경쇠약으로 쓰러지거나 호흡곤란으로 숨넘어갈 것 같았다. 재유는 놀랐다. 밥 먹고 운동만 한 애들은 쓸데없이 튼튼해서 살면서 감기 한 번 제대로 걸려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아파하는 걸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휘성이 놀란 재유를 보고 쿡쿡 웃었다.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에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 방향이 재유인지, 스스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신묘한 힘으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고 그런 걸 바란 것 같은데, 이거 참 미안하네. 무능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저거 네가 나눠봐. 나는 손에 힘이 안 들어가서 못 하겠어.”
휘성이 부적을 가리켰다. 재유도 일어나 앉았다. 말하는 송장 꼴인 애를 앞에 두고 퍼져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거 세 등분으로 나누면 되나?”
“어. 되도록 빨간색으로 글씨 쓴 부분은 되도록 잡지 말고.”
휘성은 자신의 짐 모아둔 곳으로 기어가서 옷을 싸둔 비닐봉지를 벗겼다.
“근데 빨간 부분은 와 건들지 말라는 기가?”
“주사로 쓴 거라 그래. 주사는 수은이 결정이 된 광물이고.”
“뭐?”
재유는 당황해서 부적을 놓쳤다. 이 빨간 게 다 수은이라는 소리다. 학교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는 대표적인 중금속 말이다. 여태 부적을 만지고 쥐고 팔에 두르고 물건에 덕지덕지 붙인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 했으면 여기다 소금도 삼 분의 일씩 담아봐.”
휘성이 비닐봉지를 쥐고 돌아왔다.
“어…. 내가 여태 부적 막 만지고 다녔는데…. 그거 괜찮은기가?”
“에이. 주사 값이 얼만데. 보통은 빨간 염료 써. 그리고 주사는 사용하기 위해 수비라고 수은 제거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불에 태우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불에 태우면 어떻게 되는데?”
“남아있는 수은이 증기 된 거 마시고 회까닥 도는 거지.”
휘성은 자기 머리에 대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재유는 어이가 없었다.
“그거 어디서 들었나? 설마 니 이모?”
“어.”
아까 삼지창 세우는 이야기도 그렇고, 자식뻘한테 별소리를 다 했다. 하긴. 조카가 죽을 게 뻔한 곳에 가는데도 귀신 퇴치 도구 챙겨주고 만 사람의 정신세계가 평범하겠는가. 속마음이 말로 튀어나왔다.
“니 이모란 사람도 참 야속하다. 조카가 이딴 데 오는데 말리지도 않고.”
“우리 이모보고 천기누설하고 신벌 받아 죽으라고?”
휘성이 재유를 정색하며 노려봤다. 재유는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기가?”
재유는 대화 주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소금까지 세 등분으로 나눠놨고, 봉지 입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소금이 새는지 확인했다.
“부적은 붙이고 소금을 현관 근처에 쭉 두르든지 접시에 담아놓든지 해서 못 들어오게 막을 거야. 어떻게든 하루는 버티겠지. 그다음이 문제지만.”
갑자기 휘성이 같잖게 재유 눈치를 봤다.
“그래서 음…. 네가 어른들 방에 들어가 줘야 할 것 같아. 방에 하나씩 상황 대처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른들 방에는 없잖아. 돌하르방이 부적 붙이고 소금 쳐둔 거 보면 백퍼 치울 거라.”
“돌하르방?”
“우리 감독님 별명. 미신 혐오할 게 분명한 사람이지.”
“근데 내가 그리 가면 우리 아들 방은?”
“준수 있으니까 괜찮아. 어지간한 귀신은 걔가 다 찜쪄먹어. 그리고 너 핑계 생각해 놨어? 백퍼 들킬 텐데 이상한 소문 돌아서 커리어에 지장 가는 거 싫으면 변명 그럴듯하게 지어내야 해. 나도 고민해야 하는데….”
“니는 고민할 필요 없지 않나.”
“무슨 소리야?”
휘성이 오만상 찌푸리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니 귀신 보는 거 애들한테 얘기 안 했나?”
재유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지국민과 전영중은 그가 귀신을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휘성은 그걸 알린 적 없다는 듯 반응했다.
“미쳤다고 내가 왜? 말하는 순간 소문 쫙 나서 온 농구판이 날 미친놈 취급할 텐데 정신 나갔다고 그러겠냐? 나 농구 그만두라고?”
휘성이 펄쩍 뛰었다. 재유는 실수하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 들켰구나.
말하는 본새 보니 견적이 나왔다. 저 얼빵한 성격으로 질색팔색하려면 심하게 데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학교 같은 데서 소문이 나는 바람에 따돌림이라도 당했겠지. 인간들은 다름에 대해 정직하게 공격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상식적으로 컸을 키에 괴이한 소문까지 겹치면, 피뢰침처럼 악의가 모였을 것이다.
숙소생활을 하게 되면 사생활이 없어지긴 한다. 그런데 비밀의 강도가 다르지 않은가. 안 좋은 경험을 했을텐데도 제대로 비밀 간수를 못 해서 들켜? 하긴. 머리도 빠릿하게 안 돌아가는 놈한테 뭘 기대할까.
그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재유도 휘성도,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재유. 자? 우리 연습 끝났어.”
준수였다. 일순 긴장이 풀렸다.
“문 안 잠가놨다.”
재유가 외치면서 문에 붙여놨던 이불을 뜯어 대충 장롱에 처박았다.
“뭐야. 안 자고 있었네?”
준수는 문을 벌컥 열었다 놀라서 흠칫했다. 그가 휘성을 가리키며 재유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내가 헛것 보는 거야? 왜 좀비가 있냐?”
휘성은 준수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재유는 휘성의 가운뎃손가락을 억지로 접었다.
“그래서 연습은 벌써 끝난 기가?”
“어. 이상한 일이 많아서 감독님들이 오늘은 일찍 끝내자고 하시더라.”
저번에 호환귀가 난리를 쳐서 연습이 일찍 끝났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다. 재유는 불현듯 자신이 잊어버린 게 떠올랐다. 연습 끝나면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주변 확인한다고 밖에 나갔다. 재유는 준수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간 뒤, 다급하게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1층에서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가면 안 돼요! 이 날씨에 어두운 숲속을 돌아다니는 건 호러물 클리셰 협회에서 끔살 플래그 1위로 선정한 행동이라니까요?”
상호가 울상을 지으며 이현성 감독의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같이 나가려고 채비하던 서인진 코치는 당황해서 상호가 난장 피우는 걸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상호, 이거 좀 놔봐, 아악! 허리 나간다! 허리! 니 체중 생각하라고, 으허헉!”
저런. 결국 이현성 감독의 허리에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상호. 감독님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서인진 코치는 얼핏 화난 것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감독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산 타는 건 힘드시겠죠?”
“절대 무립니다….”
“일단 상태를 봅시다. 이거 여기 사람들이 수해 방지 잘 해놨거니 하고 기도나 해야겠네요. 상호, 너는 반성하고.”
서인진 코치가 이현성 감독을 부축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의외로 그는 상호를 크게 꾸짖지 않았다. 재유는 벌어진 입을 간신히 닫았다. 상호는 그가 해결해 본 적 없는 문제를 패륜적인 방식으로 해결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재유는 풀이 죽어 시무룩하게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상호를 불렀다.
“상호.”
“네?”
재유가 이름을 부르자, 그는 놀라서 어깨를 파득 떨었다.
“잘했다.”
재유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다. 상호는 언제 기가 죽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는 허락을 받은 양 재유에게도 치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햄한테도 무슨 일 있었죠. 네? 그게 뭔지 알려주면 안 돼요?”
“뭐?”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재유가 정색하자 상호는 빠르게 꼬리를 내리곤 위층으로 도망쳤다.
상호 덕분에 고비를 넘기니 다른 고민이 생겨났다. 무슨 핑계를 대지? 휘성이 말한 건 부적 붙이다 들켰을 때 할 변명을 생각해 두란 거겠지만 재유는 그 전에 어떻게 어른들 방에 들어갈지 고민해야 했다. 휘성한테 베개로 얻어맞은 게 떠올랐다. 뇌진탕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아프다고 말로만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했다. 증거가 필요했다. 재유는 근처 벽을 들이받았다. 벽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닦았다. 이 정도면 어디 다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올라가 보니 준수랑 지국민이 대화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저 인상과 키면 콩트를 찍고 있어도 진지해 보일 것이다. 지국민은 재유를 발견하자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이거 휘성이가 너도 주래.”
그가 부적 뭉치와 소금 봉지를 건넸다. 아 맞다. 챙기는 걸 까먹었다. 준수가 지국민을 옆으로 밀어냈다.
“다쳤어? 이마에서 피 나잖아.”
“실수로 찧었다. 신경 쓰지 마라. 이 정도 가지고.”
준수가 눈을 부릅뜨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얘는 왜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한 건지. 재유는 그가 반창고라도 붙이자고 끌고 가기 전에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상의 자락으로 대충 닦았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지랄이야? 성준수랑 그 이야기 하고 있었어.”
“이휘성이가 어떻게 할지 알려주지 않았나?”
“들었지. 준수한테도 전달했고. 그런데… 오늘 계속 이상했잖아.”
“그걸 왜 재유한테 처 물어? 이휘성한테나 물어봐.”
“아파서 뻗은 애를 어떻게 깨워. 얘는 뭐 아는 게 있나 해서.”
지국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휘성은 재유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는데 그 잠깐 사이 잠든 모양이다. 아니, 이건 실신했다고 하는 게 적당하다. 그런데 이놈이 자기가 뻗은 것도 대책 있는 게 맞겠지? 워낙 칠칠맞은 놈이라 자기네 학교 애들 안전이 달린 일인데도 믿음이 가질 않았다. 재유는 미심쩍은 의심은 마음 구석으로 밀어놓고 각 팀 주장에게 신신당부했다.
“너희는 시킨 대로만 하면 된다. 절대로! 다른 애들도 너희도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 그리고 준수. 내는 오늘 니들이랑 따로 자야 한다.”
“왜?”
“어른들 방에도 이거 붙여야지.”
재유는 부적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준수는 재유가 굳이 다른 방에 가서 부적 붙이는 짓을 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구겼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진재유!”
어른 방으로 들어가려는 재유를 지국민이 불렀다.
“그래서 휘성이는 괜찮은 거 맞지?”
지국민의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약간 떨렸다. 거기서 엿보이는 건 불안이었다. 지국민은 이 비상식적인 사태에 의문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가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건 친구의 안위였다.
“…괜찮을 거다.”
아마도. 재유는 일부러 뒷말을 삼켰다. 지국민이 불확실한 안도라도 가질 수 있게 말이다.
그는 어른 방에 노크하고 희미하게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었다. 이현성 감독이 티셔츠를 걷어 등짝을 드러내놓은 채 엎드려 있었다. 서인진 코치가 그의 지시를 받으며 파스를 붙여주고 있었다.
“사람의 노화는 26살부터 급격히 진행된다는 주장이 있지. 특히 농구 선수들은 관절이 상해있는 경우가 많고, 손상된 관절과 인대를 보조할 방법은 근육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이게 농구선수를 그만뒀어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지. 그런데 너는 전혀 그러지 않은 것 같구나.”
그리고 옆에서 윤경택 감독이 논리적으로 이현성 감독의 상태를 차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재유한테는 이현성도 나름 어른인데, 어른이 더 나이 많은 어른한테 꼼짝없이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광경을 다른 지상고 애들도 봤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재유. 무슨 일이니? 너 이마에서 피 나는데? 어디 박았어?”
서인진 감독이 놀라서 물었다.
“네. 그거 때문에 왔어요. 이휘성이랑 놀다가 머리를 찧었어요.”
“감독님이 얌전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니? 평소에는 안 그러면서 왜 그랬니.”
서인진 코치가 이현성 감독 등에 파스 붙인다고 꺼냈던 구급상자에서 습윤밴드를 찾아 이마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살짝 속 울렁거려요.”
“뭐? 니 일직선으로 걸어봐라.”
이현성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재유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똑바로 걷는 거 보면 뇌진탕은 아닌 것 같군.”
윤경택 감독이 의견을 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옆에서 재우면서 상태 봅시다. 재유가 꾀병 부릴 아는 아니라서요. 괘안나?”
“네.”
재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작전 성공이다. 그는 지상고 숙소방에서 세면도구를 갖고 오면서 수건 사이에 준비물들을 숨겨 들어왔다.
돌아와 보면 서인진 코치와 윤경택 감독이 학생 관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재유는 윤경택 감독이 좋은 감독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직감적 요소를 배제하며 분석적으로 전술전략을 짜는 성향은 타의 귀감이 될 만하며, 애정을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학생들을 대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희찬이와 조재석이 떠드는 걸 주워들어 보면 여간 꼬장꼬장한 게 아닌 것 같던데 그걸 서인진 코치가 배워오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지상고 숙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방 제일 구석에 처박혀 최대한 존재감을 죽인 채 노래를 듣고 있던 재유의 얼굴 앞에서 이현성 감독이 손을 흔들었다. 재유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그가 이리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재유가 가까이 오자 이현성 감독은 서인진 코치나 윤경택 감독은 듣지 못할 크기로 소곤거렸다.
“그래서 진짜 아무 일도 없었나?”
“별일 없었는데요?”
재유는 최대한 태연한 무표정을 연기했다. 이상했나? 딱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에이. 내한태만 살짝 말해봐라. 남자들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나!”
이현성 감독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허리 아파서 골골거리는 상태로 그래봤자 장난스럽기는커녕 불쌍하기만 했지만 말이다.
“저 진짜 괜찮아요.”
쳇. 안 넘어오네. 재유가 끝까지 넘어오지 않자, 그가 혀를 찼다. 이현성 감독은 끙끙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그가 이전까지의 장난기를 싹 지우고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재유. 준수가 니 걱정 많이 했다. 상호도, 다른 아들도 신경쓰여했고. 그러니까 니한테 안 좋은 일, 힘든 일 있을 때 니 주변 사람들한테 털어놓고 후련해져라. 앓다가 맘 상하지 말고. 그게 니 걱정해주는 사람한테 지킬 수 있는 도리기도 하다. 알았제?”
재유는 고개를 끄덕이곤 장롱에서 이불을 끌고 왔다.
“이놈이 잔소리 듣기 싫단 소리를 저렇게 표현하네.”
이현성이 투덜거리더니 다른 어른들을 향해 외쳤다.
“재유 졸려서 일찍 잔답니다. 저희도 일찍 자죠?”
“그럴까요?”
“그러면 저는 아들 잘 있나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아이고….”
이현성 감독은 서글픈 신음을 내뱉으며 어기적어기적 나갔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소리가 에어컨 돌아가는 미약한 소음을 묻어버렸다. 재유는 눈을 떴다. 습기 먹어 피부에 달라붙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윤곽을 어렴풋이 잡아냈다. 조용한 숨소리가 백색소음 사이에서 미약하게 들렸다. 아무도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았다. 전부 깊은 잠에 빠진 게 확실했다.
재유는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움직였다. 수건 사이에 껴 놨던 소금과 부적을 꺼냈다. 미리 작게 뜯어서 가져온 테이프로 부적을 벽에 나눠 붙였다.
소금을 뿌리는데 스르륵 방문이 열렸다. 시꺼멓게 보이는 손이 조심스럽게 문틈으로 들어와 주변을 더듬거렸다. 문 너머는 불길하게 조용하기만 했다. 늑대가 염소를 속이기 위해 앞발에 밀가루를 묻히듯 그것이 인간을 기만하기 위해 손부터 내민 것이었다. 팔이 점점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재유는 손등을 찰싹 쳐냈다. 어딜 되먹지도 않은 수작질을 부려. 문을 확실히 닫고 소금을 마저 친 뒤 바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 내일 저 무속적으로 불길한 난장판을 들키지 않게 치우려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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