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어한 묘사가 있습니다.
코골이가 매미 울음과 성량을 겨루듯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진재유는 닭살 돋은 팔을 문지르면서 코 고는 놈을 찾았다. 이불을 다 걷어찬 희찬이가 상호의 배 위에 다리 한 쪽 올려놓고 대자로 퍼져 자고 있었다. 상호가 갑갑한지 표정을 찡그리며 잠꼬대를 꿍얼거렸다. 희찬이의 코에는 돌돌 말린 휴지가 박혀 있었는데 왼쪽은 뽑혀 있었다.
희찬이는 코고는 습관이 있었다. 숙소 사는 농구부원들이 다들 잠버릇이 없다 보니 얘도 당연히 곱게 잘 거라고 넘겨짚은 게 실수였다. 다들 무뎌서 누가 코를 골든 말든 잘 잤지만, 준수는 그렇지 못했다. 합숙 첫날, 내내 잠을 설친 준수는 희찬이를 죽여버리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코골이를 사람 힘으로 어쩌겠는가. 준수가 참는 수밖에. 희찬이와 준수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게 최대한의 배려였다.
재유는 옆을 내려다봤다. 운동부 여섯 명이 셋씩 상하로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있는 형태였는데 둘째 날에 코골이 때문에 자리 배치를 다시 한 뒤로 재유 왼편이 준수 자리가 되었다. 그는 베개와 이불을 두 개씩 가지고 몸을 돌돌 말고 자고 있었다. 어쩐지 춥다 했더니 저 이불 중 하나가 재유 것이렷다. 베개는 위쪽에서 머리 맞대고 자던 다은이한테 가져왔는데 다은이는 둔한 건지 깊이 잠든 건지 베개가 있든 없든 정자세로 잘 자고 있었다.
재유는 벽걸이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쯤이었다. 지금도 코끝에 비린내가 맴돌 정도로 생생한 꿈을 꿨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정말 꿈이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팀원들이 다 살아 있으니, 재유가 미쳤던지 개꿈을 꿨던지 중 하나 아닐까? 새벽 5시는 자기도 깨있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는 태성이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희찬이의 콧구멍에 새 휴지를 쑤셔 넣은 뒤 그가 걷어찬 이불을 가져와 덮었다.
오늘 아침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재유는 늦잠을 잤고 후다닥 씻고 옷 갈아입으니 아침 먹을 시간이었다. 메뉴는 밥은 완두콩밥, 국은 시금치 된장국, 반찬으로는 함박스테이크에 김치와 도토리묵이 나왔다. 재유는 된장국의 시금치를 젓가락으로 깨작거렸다. 합숙은 밥이 정말 잘 나왔다. 그렇지만 자는 동안 뇌가 상영하는 4D 공포 테마 스너프 필름을 강제 시청했는데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특히 고기. 중학생 때부터 운동한 청소년으로서 고기에 쌍수 드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오늘은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역한 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고 씹히는 질감도 오돌토돌 불쾌했다.
“함박스테이크 안 먹을 거면 제가 먹어도 되나요?”
눈에 고기가 낀 태성이가 함박스테이크를 노리며 재유의 급식판에 젓가락을 들이댔다. 재유는 태성이의 젓가락을 쳐내고 함박스테이크를 베어 물었다.
“우와…. 그게 한입에 들어가요?”
공태성이 반, 아니 3분의 1토막 난 함박스테이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재유는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면서 그를 흘겨봤다. 어딜 고기를 노려. 그렇지만 속이 메슥거려서 나머지는 도저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재유는 다른 반찬들만 다 먹고 식판을 수거함에 쌓았다.
“웬일로 고기를 남기냐?”
준수가 신기해했다. 이놈은 줄서기 경쟁에서 이겨 함박스테이크를 두 개 먹는데 성공한 승리자였다.
“어제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런지 속이 안 좋다.”
사실 억지로 삼킨 함박스테이크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 만에 접시 10개 비운 것처럼 속이 안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태성이한테 스테이크를 줄 걸 그랬다.
“체한 거 아냐? 소화제 갖다줄까?”
준수가 재유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재유는 순간 팔이 둥둥 떠다니는 환각을 보았다. 준수의 팔을 붙잡았다. 차가워 보일 만큼 피부가 하얬지만, 생명이 박동한다는 증거인 온기가 느껴졌다. 팔을 쫙 펴서 오금을 유심히 살폈다. 실금이나 흉터처럼 부위가 끊어졌다 붙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손목을 잡고 쫙 당겨보았다. 죽은 조직을 이어붙여 둔 것처럼 탄성력 없이 툭 끊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니 뭐하냐?”
준수가 공태성 보듯 재유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이다. 너는 뭐 꿈 꾼 거 없제?”
“잘 잤는데. 너 진짜 뭐 잘못 먹었냐?”
재유는 준수의 면박을 무시하고 뒤에서 상호와 수다 떨며 걸어오던 희찬이의 헤어밴드를 쭉 잡아당겼다. 밴드 아래를 포함해서 얼굴 어디에도 짐승의 발톱에 긁힌 상처는 없었다. 손을 놓자 탄성력 좋은 밴드가 짝, 이마를 때렸다. 상호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신기루처럼 손이 머리를 통과하지 않았다. 짱구가 동글동글한 게 시골집 진돗개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손에 느껴지는 따뜻함, 귀에 들리는 목소리들. 이 감각들이 전부 광기나 착각이나 헛것일리는 없었다. 속이 좀 편해졌다. 죽음은 영원한 끝이요, 죽음에서 생명을 돌이킬 수 있는 법은 없었다. 팀원들과 급식을 몇 번씩 받아가면서 배를 채우고 공을 튀기며 하루를 보내는 일상, 이게 분명 그가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널린 B급 감성 공포물이 아니라. 재유는 확인할 용기가 생겼다. 마음의 짐을 덜어야 점심에 나오는 삼계탕은 편한 속으로 먹을 수 있을 것 아닌가.
“내는 잠깐 어디 갔다 오겠다.”
“알겠어. 연습에 늦지 말고.”
준수는 목적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재유는 복도를 뛰어갔다. 아침이라고 무성하게 자란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이 햇살을 받아 연두색으로 빛났다. 소음 공해가 없어서 매미의 울음소리도 듣기 좋게 우렁찼다.
그는 예의 그 방 앞에 도착했다. 어제 나오면서 걸어놓고 간 대로 옛날식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자물쇠를 문 옆에 놓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은 전날 나오면서 정리해 둔 그대로였다. 햇살이 비춰 공기 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티끌이 보였다. 낡은 목재 재질의 가구들이 정오라는 시간대와 맞물려 공간이 포근해 보였다.
선반을 살펴보았다. 선반은 제일 아래 칸에는 매트, 맨 위 칸에는 밀대에 끼우는 걸레가 놓여있었다. 가운데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에어컨도 없는 갑갑하고 습도 높은 방 안이 갑자기 너무 싸늘하게 느껴졌다. 어금니를 악물고 꿈에서 발로 잔해를 밀어놨던 자리를 확인했다. 새까만 가루 더미에 상자의 검은 파편이 비죽비죽 나와 있었고 그 중심에 반 쪼개진 항아리가 몸통에 감긴 금줄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곱아드는 차가운 손가락을 간신히 펴서 항아리를 금 간 대로 열어보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악몽이 장벽을 넘어 현실과 섞여들었다.
준수는 젓가락으로 닭다리를 들고 살을 발라냈다. 오늘 점심은 삼계탕과 밥과 깍두기, 산적꼬치에 디저트로 수박화채가 나왔다. 예산 태반을 식비에 꼬라박은 것 같은 메뉴였다. 밥이 이렇게 잘 나오는데도 그의 앞에 앉아있는 놈은 보는 사람 입맛 떨어지게 맨밥에 깍두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닭고기는 이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식충이 새□들한테 줘버렸다.
“이건 준수 네가 묵어라.”
재유가 화채가 든 종이컵을 준수의 식판 위에 올려두었다.
“너 어디 아프냐? 진짜 체한 거 아니야? 소화제 먹으라고 했잖아.”
“아픈 건 아니고, 그냥 기분 나쁜 꿈을 꿔서 입맛이 없다. 내는 괘안타.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그래. 오후 연습 시작할 때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방 가서 누워있어.”
준수가 외쳤다. 재유는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남긴 음식을 음식물 통에 버리고 식당을 나가버렸다. 재유가 오늘은 정희찬 뺨치게 안 먹고 있으니 어지간히 사나운 꿈인 것 같았다. 공태성이 재유가 밀어놓고 간 삼계탕의 닭다리를 밉살스럽게 처먹고 있었다.
“야 이 돼지 새□야. 너는 닭다리 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아이고 즈언하. 음식에는 죄가 없지 않습니까. 걱정되면 소인을 갈구는 게 아니라 까스활명수라도 들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태성은 그 쓰지 말라고 매번 말하는 가증스러운 말투로 이죽거렸다. 준수는 성질이 나서 화채를 입에 털어 넣고 얼음을 까드득 씹어먹었다. 한낱 꿈이 사람 기분을 얼마나 잡치게 할 수 있는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재유햄이 꿈 때문에 상태가 안 좋다고 하는 건 거짓말 같아요.”
재유의 삼계탕에 있던 닭가슴살을 발라먹던 기상호가 의견을 냈다.
“뭐? 재유는 아침부터 밥 잘 안 먹었잖아. 우리 상호도 □같은 꿈을 꿨니? 아니면 뭘 잘못 처먹었니?”
준수가 성질을 부리자, 상호가 더듬더듬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게 아니고 뭐라고 하지…. 재유햄이 개꿈을 꾼 건 맞는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아침에 입맛이 없었던 것도 맞고요. 근데 햄이 확 상태가 안 좋아진 기점은 아침 훈련 때더라고요. 훈련에는 평소처럼 열심히 참여하는데 묘하게 불안해 보이고 누가 부르면 흠칫흠칫 놀라고 가끔 저희 보고 귀신 본 듯한 표정 짓고요. 충격 먹은 사람처럼요. 결론적으로 저는 재유햄이 꿈 때문에 상태가 안 좋다고 하는 건 어느 정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변태 □끼…. 그걸 일일이 관찰하고 있냐?”
“네?! 힝….”
기상호는 준수의 징그럽다는 눈초리를 받고 쭈그러들었다. 그의 세심한 관찰력은 독보점인 장점이지만 지금처럼 소름 끼칠 때가 있었다.
“하지면 여기 충격 먹을 게 뭐가 있노. 산의 정기를 받아 날아다닐 수 있는 거대 바퀴?”
정희찬이 웃기지도 않은 딴지를 걸었다. 그런데 준수는 짚이는 데가 있었다. 재유는 1층을 자주 갔다. 아침 먹고 나서도 그쪽을 갔던 것 같다. 꿀단지라도 숨겨놨나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게 그 둘의 방식이었다. 묻지 않지만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게 눈물나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했다. 그런데 재유가 반나절만에 병든 닭처럼 기운이 빠져버린 건 왜 그런지 준수는 알 수 없었다. 개입한 변수를 알아낼 필요성을 느꼈다. 준수는 삼계탕 국물을 쭉 들이켰다.
“준수햄 어디 가세요? 삼계탕 남았는데 안 받으러 가세요?”
“몰라도 돼.”
준수는 식판을 반납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사실 그는 1층에 오는 게 유쾌하지 않았다. 이 층은 미묘하게 찝찝하다 해야 할까. 아무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준수 혼자만의 인상이 아니고 여기 온 사람들 태반이 공유하는 감각이라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느낌 없이 후덥지근하기만 했다. 마치 원흉이 사라진 것처럼.
1층은 2층과 비슷한 구조로 복도식 아파트처럼 복도에 길게 방이 있는데 전부 잠겨 있었다. 준수는 방 손잡이를 일일이 돌려 봤다. 열리는 문은 없었다. 그는 복도 끝에 도착했다. 2층 복도 끝에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여기는 문이 달려있었다. 예외적인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이 열려있었다. 이 방을 잠그는 데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자물쇠는 문 앞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준수는 자물쇠를 집어 들었다. 이빨 달린 말 문양이 있는 옛날식 자물쇠인데 녹이 슬어 흔드는 대로 줏대가 덜렁거렸다.
준수는 문을 열었다. 방은 오래 방치된 창고 같았다. 왼편에는 선반, 오른편에는 뜬금없이 책장이 있고 중앙에 작은 창이 나 있어 안 그래도 좁아터진 공간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닥에는 회색 먼지가 쌓여 있어 흔적이 잘 보였다. 가령 신발 자국이라든지. 준수는 혀를 찼다. 본인은 자각이 없어보였지만 그가 보기에는 재유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원중고 애들이랑 같이 지내는 스트레스를 여기서 보내면서 해소한 거겠지.
중간 부분은 둥글게 먼지가 없었다. 준수는 그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편 선반 맨 밑에 수납된 매트 중간이 붕 떠 있었다. 손을 집어넣어 보니 딱딱한 게 집혔다. MP3와 줄 이어폰이었다. 기종과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재유의 MP3가 확실했다. MP3와 줄 이어폰을 바지 주머니에 꾸겨 넣고 선반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 칸에 네모나게 먼지가 묻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아래 바닥에는 자잘한 나무 파편과 검은 가루가 쓸린 흔적이 있었고 흔적이 끝나는 종착점에 부서진 상자와 수북하게 쌓인 새까만 가루, 반으로 쪼개진 금줄 두른 항아리가 있었다.
준수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상자 파편을 집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검은 칠이 붕 떠 있어 손톱으로 긁어보았다. 노란 안쪽 면이 긁혀나오면서 나무 표면이 드러났다. 상자에 페인트를 칠한 게 아니라 노란 종이를 발라놓았는데 그게 검게 변색된 거였다. 감이 오는 게 있어 새까만 가루를 검지로 찍어 혀끝에 대 보았다. 짠맛이 났다. 이건 소금이었다. 정작 금줄 두른 항아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김이 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이 항아리 속에는 원래 무엇이 있었는가?
재유는 숙소 방에 있었다. 베개나 이불 없이 멘 바닥에 팔 베고 누워있었는데 벽 방향으로 누워서 동글동글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궁상떠는 아저씨 같았다. 준수는 재유 곁에 앉았다.
“옜다. 네 물건 가져가라.”
그는 MP3 모서리로 재유의 등을 쿡쿡 찔렀다. 재유가 어깨 너머로 손을 휘적거렸다. 손바닥에 MP3를 얹어주었다. MP3를 확인한 그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준수는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은 거지 심문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재유가 약간 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준수 니는 스토커처럼 사람 뒤나 밟고 다니나.”
“상호가 니가 이상하다고 했거든? 그때 네가 1층에 자주 갔다는 게 딱 기억이 났어. 니가 뭘 해먹었는지도 봤고. 그래서 그 항아리 안에는 뭐가 있었길래 네가 그렇게 놀란 거냐?”
“몰라도 된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지는 않네?”
재유가 몸을 일으켜 양반다리 하고 앉았다. 목에 핏줄이 돋은 게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같잖게 말장난 치지 마라. 거긴 뭣도 없었고, 내가 그냥 지레 겁먹어서 그런 기다.”
재유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둥근 눈매도 인상을 쓰니 제법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준수는 사람이 어떨 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알고 있었다. 뭔가 숨기고 싶을 때, 부정하고 싶을 때, 증명하고 싶을 때. 같이 합숙 온 옆 동네 빡대가리가 가르쳐 줬다. 준수는 조곤조곤 읊조렸다.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모두를 죽이기라도 했어? 진재유. 네가 실수했으면 잘못을 밝히고 도움을 구해서 수습을 해. 덮어놓고 도망치려 하지 말고.”
“준수……. 니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
재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크게 눈이 눈물을 머금을 것처럼 그렁거렸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와서 당황했다. 얘가 도대체 왜 이러지?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데…?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통 속의 뇌인지 그냥 □같은 꿈을 꾼 건지 그게 진짜 현실인 건지 오락가락하는데, 내가 그냥 미친놈이면 좋겠는데! 그게 거짓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니가 뭘 안다고 내한테 그렇게 말해!!! 니가 뭘 안다고!!!”
재유는 성대가 터져라 비명같은 악을 써댔다. 그가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전학 와서 처음 봤다. 준수도 열이 올라서 같이 소리 질렀다.
“그럼 □발,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아가리를 싸물고 있는데!!! 우리가 뭐 고민 있고 한 거 다 터놓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힘들면 □랄 발광하지 말고 말을 해! 도와줄 수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개□발 □같은 지□이야!!!”
“하, 니가 내를 도와준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성준수.”
재유는 싸늘하게 준수를 비웃으며 어깨로 치고 지나갔다. 사람의 목소리는 차갑다 해도 냉수처럼 끼얹어서 화를 식히게 할 수는 없었던지라 열이 더 뻗친 준수가 재유를 돌려세우려 했다. 재유가 문을 열어버리는 게 더 빨랐고 문 앞에서는 팔짱 낀 이현성 감독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그들아. 니들은 목청도 참 좋다. 싸나이들의 대화는 다 끝냈나?”
아뿔싸. 연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미 오후 연습 시작 시간으로부터 10분이나 지나 있었다. 재유와 준수는 이현성 감독에게 붙잡혀 체육관으로 끌려갔다.
묘하게 재수가 없는 오후였다. 바닥에 비눗물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나자빠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공이 자꾸 골대에 끼거나 누구 머리에 맞거나 했다. 벌레들도 어디 숨기라도 했는지 모기 날아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사람 소리와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뿐이었다. 특히 지상고는 숨도 준수와 재유 눈치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와 이리 조용하노. 점마들 아직도 화해 안 했나?”
이현성 감독은 머리의 물기를 털며 어이없어했다. 재유와 준수는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정확히는 재유가 준수한테 최대한 거리를 두고 미적미적 체육관을 치우고 있었다. 분위기가 저렇다 보니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둘이 크게 싸웠다는 걸 알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평소 행실이 있다 보니 재유가 기분 상한 티를 낼 정도로 준수가 잘못했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니들! 언제까지 꽁해 있을기가! 쿨하게 화해 안 하나.”
이현성 감독이 호통쳤다. 재우는 비척비척 밀대를 청소도구함에 꽂고 체육관을 나가버렸다. 이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유는 연습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했는데 해가 떨어지고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니 갑자기 맥아리가 없어져 버렸다. 동태 눈깔 뜨고 다니는 게 누가 봐도 맛이 가 있었지만 물어봐도 자기는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준수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 성질만 내서 왜 싸웠는지 그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재유는 숙소로 돌아와 최대한 구석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누웠다. 생각하기 싫었다.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후배들이 들어왔는지 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재유햄~ 과자파티 할 건데 과자 드실?”
다은이가 과자봉지를 잡아 뜯으며 말했다. 재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은이는 꿀꽈배기를 봉지 뜯긴 쪽이 얼굴을 보도록 재유 머리에 놓고 갔다. 속이 쓰려서 뭐 먹을 기분이 아니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과자를 보고 있으니 점심 거른 허기가 밀려왔다. 꽈배기를 베어 물었다.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우습게도 인공적인 설탕 감미료 맛에 기분이 미미하게 나아졌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지구는 돌았고 배는 고팠다.
“같이 놀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어? 나도 과자 쫌만!”
조재석이 자기 집 안방처럼 남의 팀 문을 열어젖혔다. 공태성이 투덜거렸다.
“점마는 왜 여기 오노? 니들 방으로 가라.”
“야, 야.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놀면 좋잖아. 동양화… 땡기지 않아?”
같이 온 지국민이 주머니에서 슬쩍 화투패를 꺼내 보였다. 얼굴 인상 때문에 같이 화투를 치면 장기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뭐든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어른들에게 들키는 족족 압수당하는 화투를 마다할 모범생은 여기에는 없었다.
“우리 방으로 부르고 싶었는데 휘성이 형이 저녁부터 몸살 나서 누워있어가지고. 아픈데 옆에서 소란 떨면 미안하잖아. 어…. 근데 재유 형도 아픈 거 아니지?”
조재석이 누워 있는 재유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상호가 소곤거렸다.
“아마 아픈 건 아닌데, 재유 햄은 그렇게 관심 주면 더 쭈그러드니까 무심하게 모른 척 신경 안 쓰는 척하면 괜찮을 거예요.”
“다 들린다. 내는 상관 없다.”
조재석은 신나서 방에 들어와선 허락을 받고 뜯어둔 과자들을 한번씩 맛봤다.
“다들 고스톱 규칙은 알아? 패 짝 볼 줄은 알고?”
지국민이 화투패를 찹찹 섞더니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 좌르르 펼쳐보였다. 고개를 젓는 사람이 있자 그는 펼친 패 중 몇 개를 골라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 맞다. 나 어젯밤에 우리 방에서 흥미로운 거 찾았다?”
지국민표 화투 강의를 듣다 뭔가 생각났는지 조재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는 장롱 쪽으로 다가가더니 베개를 보관해 놓는 서랍을 빠질 때까지 잡아당겼다. 베개를 화투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안든지 베든지 하라고 하나씩 집어던지고 서랍을 뒤집었다. 조재석이 어리둥절해했다.
“어라? 우리 방에 있는 건 멀쩡했는데 왜 여기 있는 건 탔냐?”
“이걸 어떻게 찾은 거에요? 그게 더 무서운데. 뭐 망가뜨린 거 아니죠?”
희찬이가 어이없어했다. 재유는 눈이 번쩍 뜨였다. 꿀꽈배기 먹다가 사레들렸다. 탄 것, 검게 변색된 것.
“으악! 아,깜짝아. 손 왜 이렇게 차요? 햄?”
재유는 희찬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여 서랍 밑판에 붙은 것을 관찰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서랍 밑판에는 가장자리가 검게 변색된 부적이 붙어있었다.
“잠만 바람 쐬고 오겠다.”
재유는 황급히 신발을 구겨 신고 복도로 나갔다.
“저 형 왜 저래? 아까 표정 장난 아니던데.”
조재석의 질문에 희찬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희찬이도 얌전한 형이 왜 갑자기 맛이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진재유는 정처 없이 건물을 헤맸다. 울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만 머릿속을 잔뜩 메웠다. 그가 책임져야 했다. 다시 친구와 후배와 감독님이 죽는 꼴을 보는 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농구를 좋아할 뿐이고 접한 맹수라고는 동물원에서 본 사자와 호랑이가 전부인 평범한 고등학생이 뭘 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내내 부정하고 싶었다. 소리 지르고 철저하게 스스로를 세뇌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럴 것 같았다. 당면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끔찍해서 도피하고 싶었다.
복도 끝에서 검은 형체가 스르륵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지상고 숙소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땅을 밟고 있음에도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상자를 부숴 먹었기 때문에 우리 방 부적이 검어졌나 보지?”
준수가 농구화를 구겨 신고 나왔다. 그는 피부가 너무 하얘서 사람보다는 귀신같아 보였다. 재유는 흠칫했다. 그걸 봤을까? 봤다면 파국이다. 준수 성격에 100퍼센트 덤벼들 거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스토커 자식.”
“너 쫓아온 거 아니야. 화장실 가려고 나온 거다.”
“화장실은 반대편 아이가.”
“1층 화장실 가려고.”
“거길 왜 가노.”
“그냥 2층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 말이지….”
그는 재유를 지나쳐 가며 중얼거렸다. 단어 한 음절 한 음절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이 자식, 봤구나. 재유는 준수의 경로를 블락했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는 농구 코트 위가 아니고 파울을 한다 해도 호루라기를 불 심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준수는 힘으로 밀고 나갔다. 재유는 준수의 목에 팔을 걸어 붙잡았다. 신발 깔창이 바닥과 마찰하면서 뿌득거렸다. 안간힘을 썼지만 키와 몸무게에서 오는 완력 차이로 인해 준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재유는 최후의 발악으로 계단 난간에 발목 걸고 버티다가 계단이 두어 개 남짓 남았을 때 팔을 풀었다. 관성에 의해 재유는 하필이면 계단 모서리에 꼬리뼈를 찧었고 준수는 엎어졌다. 준수가 재유를 파울로 퇴장당한 공태성 보듯 노려봤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준수의 머리가 있었을 자리를 나이프만한 발톱이 달린 앞발이 가르고 지나갔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시□것은 뭐야…?”
준수가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재유는 준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그곳에 실체화된 악몽, 외면했던 공포가 있었다. 범의 형상을 띈 어두운 몸체와 인간의 고등한 악의를 담은 새빨간 눈을 가진 괴물이 인간 두 명을 굽어보고 있었다. 재유는 필사적으로 등 뒤에 준수를 숨겼다. 현실감이 돌아왔다. 친구 죽는 꼴을 두 번이나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거리를 재면서 준수만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저것은 되도록 재유를 제일 나중에 해치려 했다. 좋은 의도는 아니고, 농구부원들이 죽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그것은 몇 번의 시도가 재유의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만 내놓고 실패하자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성준수, 도망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상황을 알려라.”
재유는 준수에게 속삭였다. 준수는 놀랐는지 얼굴색이 창백했다.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썹을 확 찡그리면서 쌍시옷 발음을 내뱉었지만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재유는 어쩐지 쓸쓸하면서 속이 후련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귀를 뒷발로 긁기 시작했다. 이현성 감독은 늘 생각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뭘 어쩌란 말인가? 덤비면 찢기고 도망치면 다른 사람들이 죽는데. 그렇다고 시간을 끌면 이미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희생이 커진다. 밤은 길었다. 시간은 재유의 편이 아니었다.
그때. 윗층에서 삐이익 삐이익 귀청이 찢어져라 방범벨이 울렸다.
“야! 야옹아! 여기 봐라~”
파리하게 질린 전영중이 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방패처럼 잡고 국자로 두드리며 소리를 냈다. 도발은 잘 먹혔다. 그것이 휘두르는 발톱에 양철 쓰레기통 뚜껑 끄트머리가 절단기로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흐아악! 성준수 이 미친 새□! 간땡이 띵띵 불어서 배 밖으로 튀어나온 새□! □같은 새□! 빨리 와!”
전영중은 준수에 대한 욕을 푸지게 늘어놓았다. 준수는 행동으로 화답했다. 창밖으로 그가 2층에서 뛰어내리는 게 보였다. 잠기지 않은 창문을 넘어 그것의 배후를 잡는 데 성공했다. 장대에 식칼을 청 테이프로 감아 만든 창을 그것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그것은 배를 창이 파고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준수의 가슴을 발로 눌러 넘어뜨렸다. 창으로 막았으나 창대가 허무하게 부러졌다. 오른 어깨를 물고 잡아당겼다. 팔이 우드득거리다가 몸통에서 뜯겨나갔다. 악문 잇새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팔을 내팽개쳤다. 단면에서 인대와 살점 조각이 너덜거리는 상완이 재유의 눈앞에 떨어졌다.
“진재유, 진재유! 제일 간지 나는 거!!!”
준수가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반토막 난 창을 던졌다. 창은 바닥을 회전하며 재유의 발끝에 닿았다. 창을 차올렸다. 창대가 손에 감겨들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제일 멋진 거. 울부짖으며 그것의 양 눈 사이를 창으로 찔렀다. 입으로 눈물이 흘러 들어가서 입 안이 짭조름했다. 그것이 식칼을 입으로 물었다. 칼날이 산산조각났다. 재유의 목이 발톱에 꿰뚫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준수는 오른팔이 달려있던 자리를 남은 손으로 눌렀다. 그러든지 말든지 피가 줄줄 흐르는 걸 보면 살기는 글렀다. 그는 이제 진재유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친구는 귀신 들린 상자를 깼고, 항아리에서 풀려난 귀신은 사람을 마음껏 죽이고 있었다. 그것은 홀린 것처럼 넋이 나가 저항이 없는 전영중의 머리를 부럼 까듯 씹어버리고 달려온 윤경택 감독을 들이받았다. 그가 알던 세계가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준수는 이제 재유가 오늘 상태가 이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재유는 자신이 뭘 세상에 풀어놨는지, 그것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고 있었다. 마치 직접 보고 온 것처럼. 이해 뒤에 따라오는 감정은 원망이 아니라 지극한 슬픔이었다. 재유는 악의가 없었다. 호기심으로 그런 것도 아니겠지. 그냥 실수였을 뿐이었다. 그 선반은 가벼워서 작은 힘이 가해져도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런데 왜, 재유는 실수로 쳐서 넘어뜨린 게 식탁 위의 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런 일의 원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수상한 장소에 간 게 잘못이라고? 그는 그저 혼자 있고 싶은 청소년이었다. 창고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무도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 재유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상자를 깼을 거였다. 준수는 자신을 비웃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이런 일을 책임지라고 하다니, 무지는 죄가 맞았다.
준수는 고개를 돌렸다. 재유는 무릎을 꿇은 채 양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피가 흘러내려 지상고 저지를 축축하게 적셔 저지 색이 검붉은색으로 보였다. 우리 인생에서 제일 힘든 일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야 되는 건데. 이제야 희망이 생겼는데, 겨우 비상을 위한 도약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꼬라박히다니.
에어컨 밑에 이불 없이 누운 것처럼 추운데 점차 졸음이 몰려왔다. 19년짜리 삶이 찰나의 꿈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수면 시 비렘수면과 렘수면이 주기적으로 교대로 나타나며 렘수면일 때 꿈을 꾼다고 한다. 이제 깊은 잠에 빠질 때였다. 그 전에 친구에게 해줄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재유야.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진재유는 이불 위에서 눈을 떴다. 그의 현실이 천지개벽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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