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어한 묘사가 있습니다.
- 동물의 인육 섭취 암시가 있습니다.
- 사람에 따라 무서울 수 있는 묘사가 있습니다.
기상청이 점지하시길, 오늘은 날씨가 맑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유리창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장대비는 다 무어란 말인가. 천둥이 우르릉거리자 기상호의 손에서 미끄러진 농구공이 저만치 굴러갔다.
“우리 상호! 천둥이 무섭나!”
공태성이 웃으면서 상호를 놀렸다.
“아, 태성햄! 그냥 손에 땀 나서 미끄러진 거라니까요.”
상호는 목청 높여 항변하다가 성준수가 눈을 부라리자 얌전히 공을 주우러 뛰어갔다. 산만할 시간이었다. 연습이 끝나기 직전인 밤과 저녁 사이의 늦은 시간에 먹은 저녁은 소화된 지 오래라 배는 고프고 날씨는 괴담의 고향 한 편 상영하는 분위기였다. 거기다가 지상고 농구부는 감독과 코치 전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원중고 감독이 지상고도 같이 감독해 주긴 했지만 상호와 정희찬이 이상한 컨셉 잡고 떠드는 걸 보면 효과는 희박했다.
원중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이 낡은데 오늘은 습하기까지 하니 곱등이며 돈벌레에 지네까지 튀어나와서 비명이 불쑥불쑥 들려왔다. 서울깍쟁이들이라 그런지 덩치 산만 하고 키는 성인보다 한 뼘은 큰 고등학생들이 벌레 하나 손으로 못 잡고 고놈 가는 대로 겁먹은 양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렇다고 부산 촌놈들은 잡을 수 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라 벌레의 처리권은 보통 원중고에서 지상고, 최종적으로 불쌍한 이현성 감독에게 이양되었다. 대신 잡아줄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기어코 원중고의 가드인 조재석이 일을 냈다.
“형들! 이거 봐요. 저 이제 벌레 맨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조재석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다리에 달린 털이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커다란 곱등이를 잡고 있었다.
“재석아! 제발 손 치우고 그거 놔둬!”
“이 멍청아! 저걸 놔주라고 하면 어떡해! 변기에 내려야지! 조재석, 빨리 화장실로 가!”
지국민이 패닉한 이휘성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공태성이 풉 비웃었다. 그런데 그게 들린 모양이었다.
“재석아. 그러지 말고 우리 지상고 애들한테도 이거 보여줄까? 다들 좋아할 거야. 특히 저어기 준수가 좋아할 것 같아.”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전영준이 조재석의 어깨를 잡고 살살 지상고 농구부원들이 뭉쳐있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시□ 새□야. 뒤지고 싶냐? 니들은 뭐 하는 짓이야?”
준수는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었는데 나머지 지상고 농구부원들이 슬슬 그와 거리를 두는 것을 보고 턱에 핏대가 섰다.
“얘들아. 벌레 가지고 장난 그만 치고 정리해라. 재석이 너는 곱등이 휴지에 싸서 변기에 내리고 오고.”
다행히 윤경택 감독이 준수가 광역 공격 속사포 비속어를 구사하기 전에 개입해서 곱등이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다들 신나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전영중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공을 주으러 갔고 조재석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준수는 전영중 뒤통수에 엿을 날리면서 공을 주워다 철장에 던졌다.
진재유는 청소도구함에서 밀대를 꺼내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한층 거세게 오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창문을 닦듯이 쓸어내렸다. 오늘은 지상고와 원중고의 협동 훈련 3일차였다. 당연히 산에 있는 체육관이라 날씨 확인을 철저히 했다. 바닷가 사는 부산 사람들이 비바람의 무서움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날을 정했고, 예측한 대로 이틀간은 날씨가 아주 쨍쨍했다. 문제는 오늘이었다. 아침에는 구름이 없더니만 정오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해가 떨어지고 나서는 퍼붓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이현성 감독과 서인진 코치는 기상청 욕을 하면서 주변이 괜찮은지 확인해 보고 오겠다며 외출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조재석은 귀신 흉내를 내면서 지국민을 놀라게 하려 노력하다 윤경택 감독에게 들켜서 한 소리 들었고 박교진은 조재석이 귀신 소리 낼 때마다 지가 놀라서 움찔거렸다. 지상고도 나을 바 없었다. 전영준 저놈은 정리는 열심히 안 하고 근처를 알짱거리다가 기회만 잡으면 준수 성질을 긁었고 준수 이놈은 그걸 욕설로 꼬박꼬박 갚아주고 있었다. 반응을 안 해주면 알아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재유도 원중고 쪽을 볼 때마다 우수진과 시선이 마주쳐서 심란했다. 첫날부터 이랬긴 하지만 공포 영화 찍어도 손색없을 만큼 을씨년스러운 산 한복판에서 안광이 없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랑 자꾸 보게 되니 소름 끼치기 그지없었다.
아무튼 재유는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위험했다. 깊은 산 속에서 비가 이렇게 오면 산사태가 일어나기 쉬웠다. 여기 있는 인원들이 전부 토사에 휩쓸려 내일 9시 뉴스 헤드라인을 ‘고등학교 농구부 산사태에 파묻혀… 수색 진행 중’ 따위의 멘트로 장식하게 될 수도 있었다. 원중고 애들이야 도시에서 자랐으니 분위기 파악 못 할 수 있다 쳐도 부산 산다는 지상고 애들까지 칠렐레팔렐레하고 있으니…. 자신이라도 정신 차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밀대로 바닥을 다 밀어갈 때쯤 이현성 감독이 젖은 머리를 털면서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날릴 때마다 뒤로 많이 후퇴한 앞머리 라인이 언뜻 드러났다. 우비를 입고 갔는데 비가 다 들이쳐서 옷이 젖어있었다. 그는 막 대걸레로 밀고 지나간 바닥에 물 자국을 남기며 윤경택 감독에게 무어라 말했다. 재유는 걸레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만큼 접근했다.
“산사태 방지 제방은 멀쩡하고 산사태 날 것 같지도 않았는데 비가 저리 와서 내일 날씨 따라 아침에 바로 애들 데리고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경택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유는 안도했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던 걸레질이나 마저 했다. 이현성 감독은 재유가 들고 있는 밀대를 발견하고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아. 미안타. 청소 열심히 해라.”
이현성 빠르게 체육관을 나가주었다. 그래도 물 자국은 남아서 같이 밀대를 밀던 김다은이 탄식했다. 재유는 청소도구함에 밀대를 걸었다. 그때쯤 체육관 정리가 다 끝나서 학교별로 모여 각자의 숙소 방으로 가는 중이었고 준수가 체육관 문을 잡아놓고 재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청소도구함 문을 닫고 뛰어가서 지상고 농구부 무리에 끼었다.
“그래서 오늘은 누구부터 씻노? 가위바위보 갈까?”
정희찬이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일빠임.”
“나거든?!”
뭐라 할 새도 없이 다은이와 상호가 달려 나갔고, 한발 늦게 출발한 태성이가 거기 서라고 소리지르면서 쫓아갔다.
“내는 제일 나중에 씻겠다.”
“어. 그래. 계속 제일 늦게 씻었는데 괜찮겠어?”
“괘안타. 내는 잠깐 다른 데 가 있겠다. 애들 다 씻으면 연락 줘라.”
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유는 1층으로 내려가서 왼편 복도 끝으로 갔다. 1층 복도 끝에는 다른 층과는 다르게 방이 있었다. 문은 정수리에 뿔 달리고 이빨과 발톱이 날카로운 말이 새겨져 있는 옛날 자물쇠로 잠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줏대가 녹슬고 끊어져 있어 열쇠 없이도 헐렁거렸다. 그가 전날 나오면서 멀쩡해 보이도록 걸쳐놓기만 했다.
안은 창고였다. 왼편에는 낡은 나무 선반에 매트, 노란 상자, 밀대에 끼우는 천 따위의 잡동사니를 보관해 두었다. 오른편의 일부는 두 칸짜리 책장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박물관에 기증해도 될 법하게 생긴 끈으로 엮은 고서를 눕혀서 보관해 놓고 있었다. 가운데 벽에는 위쪽에 작은 창문이 나 있었다. 그는 매트 사이에 손을 넣어 숨겨둔 mp3와 줄 이어폰을 꺼냈다.
재유는 합숙 첫날에 이 장소를 우연히 찾았다. 씻는 순서 기다린다고 건물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가 1층은 복도 끝에 방이 있고, 자물쇠로 잠가 놨지만, 자물쇠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기심에 문을 열어 보았다. 내부는 먼지구덩이고 산모기가 활개를 치긴 하지만 꽤 괜찮았다. 그는 사생활이 보장되는 개인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중학생 때는 어리다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숙소에서 팀원들과 생활하느라 언제나 사람과 부대꼈다. 그는 그에게 개인 공간이 필요한지 잘 모른 채로 자라서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숙소야 암묵적으로 형성된 지정석도 있고 맨날 보는 얼굴들이니 투명 인간 취급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합숙은 달랐다. 처음 와보는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원중고 애들이 와서 말을 붙이려고 했다. 어딜 가도 관심이 따라붙는 기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란. 더럽고 낡았지만, 천국 같은 편안함을 줬다. 진재유는 자신이 혼자 있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걸 합숙 와서 알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쩌렁쩌렁한 락이 고막을 울렸다. 노래를 들으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유리창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감상했다. 여기에는 재유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는 인간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좁은 창으로 비 오고 천둥 치는 거나 감상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좋았다.
맨바닥에 앉자 있자니 눕고 싶어져서 선반의 매트를 잡아당겼다. 매트는 좀먹어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지만, 벼룩 같은 것만 없으면 장땡이다. 그런데 선반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선반이 기울어지면서 위 칸의 물건들이 재유 쪽으로 쏟아졌다. 걸레가 얼굴을 때렸다. 구린 냄새를 참으면서 선반을 몸으로 받쳐 원래대로 세워두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추락 지점을 휴대폰 후래시로 비췄다. 둘째 칸에 있던 노란 상자가 깨져 있었다. 상자는 노란색이 아니었다. 노란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놔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검은 가루가 들어있었는지 그게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그 중심에 반으로 쪼개진 항아리가 있었다. 상자 안에 항아리를 넣고 가루를 채워 넣은 형태로 보였다. 항아리는 금줄로 묶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재유가 두 손을 쫙 편 크기보다 큰 짐승의 두개골이 있었다. 송곳니가 길쭉한 거 보면 육식동물로 추정됐다. 두개골은 어둠 속에서도 후래시 빛을 받자 반질한 광택을 뿌렸다. 때깔이 흰 걸로 봐서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대한민국 어디에 이렇게 큰 짐승이 산단 말인가. 모형이 분명했다.
재유는 항아리를 수습해서 두개골을 집어넣고 가루와 함께 안 보이는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남의 물건을 부숴서 미안하지만, 창고에 방치된 걸 보면 중요한 물건 같지도 않았고 귀신 그런 거 안 믿었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귀신보다 무서운 게 너무 많았다. 입시라든지.
이번에는 선반이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매트를 꺼내서 먼지 쌓이지 않은 면이 위로 오게 폈다. 매트를 편 건 잘한 선택이었다. 누워있으니까 등도 푹신하고 습해도 산속의 밤이라 덥지 않았다. 천장을 쳐다보는데 질려 잠시 눈을 감았다.
재유는 몸이 으슬거려서 눈을 떴다. 공기가 눈 감기 전과는 딴판으로 서늘했다. 잠깐 눈 감고 있는다는 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황급히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44분이었다. 방 소등 시간은 12시라 그전에는 들어가야 하는데 한참 넘겨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해서 알람을 맞춰놨는데 못 들고 퍼질러 잔 모양이었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알람을 확인했다. 어찌나 부재중 전화와 문자와 카톡이 많이 왔는지 길이가 팔만대장경이었다. 이현성 감독에 준수, 태성, 다은, 상호에 서인진 코치까지 그와 농구로 연이 있는 모든 사람이 걸어온 연락 목록이 길게 늘어졌다.
부재중 전화 알람을 없앤 뒤, 카톡을 확인했다. 농구부에서 제일 얌전한 재유가 사라졌으니, 카톡이 아주 뒤집혀 있었다. 그는 제 발로 돌아갔을 때 죽을지 살지 점쳐보기 위해 부원 단톡방부터 들어가서 목록을 슥슥 내렸다.
-재유햄 저희 다 씻었어요
-재유햄? 어디 계세요?
다 씻었는데 어디 있냐는 1학년들의 부름으로 시작해서
-진재유 너 어디 기어들어갔니
준수가 등판하고
-재유야 불 끄기 전까지 얼릉 안 튀어나오면 잡으러간다 니 각오해라 평소에 안 그러던 아가 와 그러노
이현성 감독의 으름장이 보였다. 단톡방에 제일 마지막에 올라온 카톡은 12시쯤 온 이현성 감독이 보낸 이 근방 교통편과 길이 나와 있는 지도 이미지였다. 왜 보냈는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어서 갠톡을 확인했다.
-재유햄ㅠㅠ 어디있어요 감독님이 걱정하고 계세요 뭔 일 나신 건 아니죠?ㅠㅠㅠㅠ
희찬이가 우는소리를 냈고
-재유햄 과자파티 할 건데 어여 오세요
태성이 이놈은 선배를 먹을 걸로 꼬드기고 있었다. 이쯤 되니 재유는 모두를 걱정시킨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는 편하게 퍼질러 자고 있었는데 말이다.
재유는 마지막으로 준수에게 온 카톡을 확인했다.
-동ᅟᅡᆼ쳐
12시 6분쯤 온 카톡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끝났다. 재유는 어리둥절해서 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농구부원들에게 전화를 한통씩 걸었다.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했다. 이현성 감독은 12시 넘으면 찾으러 오겠다고 했고, 준수는 재유가 1층으로 갔다는 걸 알았다. 복도 끝에 있는 방을 못 볼 리도 없고 걸려있던 자물쇠는 문 옆에 놔두고 왔으니 열려있다는 것도 보일 텐데 왜 감독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찾으러 오지 못한 게 아닐까?
재유는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 때 사춘기와 함께 졸업했어야 하는 망상인데.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의 그냥 고등학교 A의 그냥 농구부 B인데 대회 수상 말고는 뉴스에 나올 법한 일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이현성 감독이 부주의했을 수도 있는 거였다. 하지만 준수는. 그런 장난 칠 성격이 아닌데.
팀원들 안부를 확인해 봐야 했다. 재유는 mp3에 이어폰 줄을 말아 주머니에 넣고 복도로 나왔다. 비가 와서일까. 식은 피부에 달라붙는 습기와 옅게 깔린 비린내가 그를 맞이했다. 자정이 지난 복도는 광원이라곤 밖에 켜져 있는 가로등밖에 없어서 눈의 암순응이 끝났음에도 휴대폰으로 후래시를 켜야 했다. 좁다란 복도가 끝없이 길게 느껴졌고 폐색감이 허파를 짓눌렀다. 합숙 내내 부원들을 괴롭혔던 모기 날갯짓 소리도, 가로등에 꼬인 나방들이 날아다니다가 창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귀가 먹먹했다.
재유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세 칸씩 뛰어넘었다. 2층은 비린내가 더 강하게 났다. 이 층에서 나는 냄새가 밑층까지 내려온 본새였다. 후래시가 바닥을 비췄다. 이휘성이 팔을 쭉 뻗은 채로 원중고 숙소 방 문간에 반쯤 몸을 내밀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판단 능력으로는 깨워서 방으로 돌려보내야겠다 정도의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이휘성의 어깨를 잡고 흔들려고 했다. 휘성의 눈동자는 공포로 크게 뜨여있었다. 그는 허리 아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날카로운 것에 잘려 절단면이 장기 구조가 보일 정도로 깔끔했다.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는 걸 경험했다. 마구 떨리는 불빛으로 방 내부를 비췄다. 정면 벽에는 발톱 자국 네 줄이 깊게 그어져 있었다. 벽에 기대앉은 시체는 팔에 부황자국이 있었는데 하관 위쪽이 잘려 나가 식도랑 아래턱 치아 배열이 보였다. 바닥에는 피를 인주 삼은 짐승 발자국이 찍혀있었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사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재유가 맡았던 비린내는 물비린내가 아니라 피비린내였다.
재유는 버티지 못하고 벽을 짚고 구토했다. 쓴물을 한참 뱉어낸 뒤에야 구역질을 멈출 수 있었다. 발자국은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을 앞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바로 옆에 원중고 방이 있었다. 왼쪽에는 지상고 방이 있었고 그사이에 코치와 감독 방이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확인해서 챙겨 나와야 한다는 맹목이 그를 움직였다. 숨 붙어있는 놈이 누구라도 한 명이라도 있어야 했다. 벽에 몸을 기대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이며 간신히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코치와 감독 방을 열었다. 살점이 붙은 뼈다귀가 굴러다녔고 나머지 시체 부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신원도 확인할 수 없었고 자세히 들여다볼 정신력도 없었다.
“괘, 괘안나? 살아있나? 누구라도 대답해 주라. 누구라도…. 제.”
제유는 체중을 싣다시피 하며 간신히 지상고 숙소방 문을 열었다. 그를 맞이한건 지상고 농구부원이 아니라 암흑이 뭉쳐진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는 희성이의 머리를 앞발로 누르고 흰 헤어밴드에 이를 걸어 죽죽 당이며 놀다가 재유를 빤히 쳐다봤다. 동그란 머리 위에 쫑긋 솟은 작고 둥근 귀에 고양이처럼 누워있는 폼, 이마에 만지면 찐득할 것 같은 검붉은 색의 王자로 인해 덩어리의 형태는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끝이 뾰족한 타원형 눈은 흰자는 새빨갛고 눈동자는 사악하게 검어 섬뜩했으며 인간의 악의가 느껴졌다. 그것의 입꼬리가 귀에 닿게 찢겨 올라가면서 새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그것이 몸을 일으켜서 스트레칭 쭉 하더니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은 재유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일어난 자리에 살이 발려 뼈가 드러난 다은이와 부러진 늑골 조각이 옷 밖으로 삐져나온 태성이가 보였다. 턱이 떨리면서 이가 맞부딪혔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선명해지길 반복했고 혀에서 짠 맛이 느껴졌다. 이게 현실일 리 없었다. 아주 질 나쁜 꿈인 게 분명했다. 눈을 뜨면, 퀴퀴한 매트에서 일어나서 이현성 감독에게 귀가 붙잡혀 끌려갈 것이었다.
그것은 재유를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눕더니 그의 무릎 위에 뭔가 떨궜다.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밀가루 반죽처럼 흰 팔 한쪽이 놓여있었다. 길고양이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냥감을 물어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것이 재유의 볼에 정수리를 비비며 그르렁거렸다. 짐승 누린내가 훅 끼쳤다. 재유의 고개가 그것의 머리 쪽으로 돌아가자, 그것의 머리 가죽이 갈라지면서 반질한 광택이 나는 육식 동물의 두개골이 보였다. 두개골의 눈구멍에 박힌 시뻘건 눈알이 노골적으로 재유를 구경했다. 우수한 판단 능력이 그에게 진실을 깨우쳤다. 저것은 1층 창고에 있던 상자 속 항아리에 갇혀있었고, 풀려나자 체육시설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였으며, 자유에 대한 감사 인사는 재유의 무릎 위에 있었다. 이건 어리석은 미물에게 보내는 조롱이었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재유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비명을 지르느라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자신이 상자를 깼기 때문에 살육이 벌어졌다. 이건 모두 진재유의 잘못이었다. 자신 때문에 같이 농구 시합을 한 친구도 처음으로 만난 참된 스승도 이제야 단합력이랄게 생긴 팀도 가장 힘들 때를 함께했던 동지도 전부 죽어버렸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할 꼴로. 진재유의 농구를 이루고 있던 구성원들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진재유 하나 때문에.
그것이 목구멍에서 그륵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그륵거리는 소리는 점점 껄껄거리는 사람의 웃음소리와 비슷해지다가 톤이 높아지면서 깔깔거리는 비웃음이 되었다. 그것이 재유를 휙 후려쳤다.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가슴에 불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바닥에 따뜻한 피가 고였다. 그것이 동네 고양이가 새를 가지고 놀 듯 발톱 세운 앞발로 재유를 연거푸 내리쳤다. 발톱이 등허리와 목과 팔을 꿰뚫었다. 점점 호흡이 가늘어지고 감각은 둔해져 통증이 희미해졌으며 졸려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은 건 배 쪽에서 나는 짭짭거리는 소리였다.
진재유는 이불 위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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