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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고+원중고]재유 반복 잔혹사-8

으어엌 2026. 5. 5. 23:26
  •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재유가 진정하자, 준수는 이 덥고 습한 날씨에 복도에 서있어야 했던 일 학년들이 들어올 수 있게 방문을 열어주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엾은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 학년들은 최대한 적은 면적을 차지하려 했고, 장롱 옆 구석에 밀집한 체 휴대폰 액정만 두들겼다.

초장 물 닦은 대걸레를 화장실에 돌려놓고 온 준수가 재유 옆에 앉았다. 그가 재유에게 음료 캔을 내밀었다. 제□ 캔이었고, 따뜻했다. 자판기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지, 이 여름에도 따뜻한 음료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재유는 음료수 캔을 꼭 쥔 채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머리에 준수의 어깨가 닿았다. 준수가 그를 흘끗 내려다봤다. 재유는 캔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여러 번 죽어 봐서 죽음이 별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다 상관없어져서.

뭔가 찾아냈는지 상호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활기차게 외쳤다.

“햄들, 이거 봐요. 여기에 굿한 적이 있데요.”

상호가 자신의 휴대폰을 일 학년 무리 가운데에 놓았지만 재유한테는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보세요. 여기서 신당인가? 그런 게 발견됐데요. 그런데 이곳 토지이용계획을 보면 이날로부터 3주 후 정도를 기점으로 사용 용도가 다가구주택에서 운동시설로 바뀐 걸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산에 다가구주택이면 펜션 같은 거일 텐데 이거 수상하지 않아요?”

희찬이는 골똘히 생각하다 뭔가 떠올랐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 그거 아이가. 무덤가에 초등학교 짓는 거. 운동하는 사람들 양기가 세다고 하긴 하니까. 안 그래도 여기 너무 음침하다 느꼈는데 확실히 여기 뭔가 있긴 한가 보네.”

“그러면 뭐 우리가 액막이 누름돌인 거 아이가.”

태성이가 내뱉은 말에 안 그래도 어두웠던 분위기가 더 침울해졌다. 하지만 재유는 벼락을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시설 곳곳에 붙어있는 부적을 보고도 건물 이력을 찾아볼 생각을 못 했을까?

“어디 가려고?”

“화장실.”

재유는 준수의 물음에 짧게 답하고 방 밖으로 나가 1층으로 내려가 인터넷에 장천 체육시설을 검색해 전화번호를 찾아봤다. 디자인은 멀쩡해 보이는 시설 사이트에 이용 문의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어 일단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전화는 010으로 시작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건물주 개인 전화번호였는지, 이 늦은 시간에도 전화를 받았다.

-장충체육시설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건물 공사할 때 신당을 발견한 적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 일에 관해서 듣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재유는 상대가 자신을 스팸 광고 또는 보이스피싱 취급하며 전화를 끊어버리기 전에 빠르게 용건부터 말했다. 미친놈 소리 들으면 어쩔 건가. 시간이 촉박했다.

-……? 혹시 새로 오실 무당분 되십니까?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무당 하면 기가 강해보이는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평생 기가 강하긴커녕 키도 작은 편이고 인상도 동글동글 만만하게 생긴 바람에 낮잡혀 보이며 살았는데 뜬금없이 무당이냐니. 재유는 당황해서 혀를 씹을 뻔했지만 사실을 정정하지 않고 상대의 터무니없는 오해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나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꿈자리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되던 참이었습니다. 직접 만나 봬서 있었던 일도 알려드리고 급여에 관한 부분도 결정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시나요?

“제가 바빠서 그런데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없나요?”

-확실히 이야기가 끝난 분한테만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지대나 마을 평판이랑도 연관되는 문제라…. 염병, 못 해 먹겠네. 아니, 되게 어리신 것 같은데 바로 하겠다 하면 어떡합니까? 자세히 설명은 못 하는데 이거 위험합니다. 이런 걸 잘 따져봐야 하는데 귀찮다고 안 물어보고 대충 넘어가시면 그대로 사기당하는 겁니다. 세상에 양심 없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니 잠깐만.

상대방은 훈계를 늘어놓으려다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누구십니까? 보통 사람은 아니신 듯하지만, 연락처를 돌린 분 중 학생 나이대는 없었는데….

“네. 짐작하신 게 맞습니다. 저는 무당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쪽 시설 빌려 쓰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입니다. 제가 호랭이 귀신 담은 상자를 깼고…. 그걸 어떻게 수습해야 해요. …그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재유는 빠르게 사실을 실토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휴대폰 너머에서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상대가 진정하면 강도 높은 비난이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귀에 들린 건 한탄 섞인 감탄이었다.

-그걸… 부쉈다고요? 아…. 진짜로 나타나는군요…….

재유는 속이 울렁거렸다. 어퍼컷을 맞을 줄 알고 얼굴을 가드 했더니 명치에 주먹이 꽂힌 것 같았다.

“뭐라고요?”

-언젠가는 사악한 것의 봉인을 풀고 물리칠 분이 찾아올 것이니. 상자를 깨고, 그것을 무찌르려 하니 당신이 그 귀인이십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유는 환대가 이해되지 않았다. 뭔가에 오래 시달리면 사람이 사리 분별도 못 하게 미쳐버리는 건가? 어떻게 그 끔찍한 것의 봉인을 풀어버리고 수습도 못 하는 무능한 이를 반길 수가 있지?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면 여태까지 몇 번이고 죽어야 했던 친구와 후배와 감독님과 코치님과 지인들은 뭐가 되는 거지?

손등이 새하얘지게 꽉 쥐고 있던 휴대폰을 누군가 쏙 빼내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아~. 저기요, 잡설 늘어놓지 말고 본론부터 말하자고요. 일단 아는 거 다 말해보세요.”

-누구십니까?

“에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혼자 다니겠어요? 조수를 데리고 다니는 게 클리셰 중의 클리셰라고요. 아무튼 당신이 찾는 귀인의 자칭 조수 되는 사람입니다.”

-…하여튼. 여쭤보신 부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건물 공사를 할 때, 땅을 굴삭기로 파다 우연히 신당을 발견했습니다. 공사를 강행했으나, 그 뒤로 계속 사고가 생길뿐더러, 매일 방 밖에서 가족의 목소리지만 절대 가족은 아닌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꿈을 꾼다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굿이라도 하려 했으나, 다들 하기 싫다며 거부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이 마을 출신 무당분이 나서서 신점을 보시곤, 저건 아주 악독한 악귀를 봉인한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봉인은 불안정해지고 있지만, 비범한 분이 나타나 언젠가는 직접 상자의 봉인을 불고, 악귀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조상이 저것과 대항할 수 있는 수단 또한 남겼으니 제게 도망쳐서 끔찍하게 죽을 날만을 기다릴 건지, 귀인이 도래할 날까지 상자를 본인과 같이 관리할 것인지 선택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후자를 택하셨군요. 그 선조가 남겼다는 수단은 어떻게 됐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문화재라고 국가에 죄 귀속됐거든요.

“네?”

-그 신당 벽면에는 활이며 화살이며 쇠뇌, 창과 칼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상태가 좋았고요. 그런데 공무원들이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건지 싹 몰려와선….

상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재유를 쳐다봤다. 재유도 다섯 번을 죽어봤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라 헛웃음이 나왔다. 영험한 나무 벨 때도 나라님을 들먹이는 나라인데 공무원 앞에서 조상님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쇠뇌 하나와 화살 세 개는 빼돌려 숨길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것을 물리쳤던 착호갑사가 사용했다고 하는 전사가 있는 쇠뇌니, 효과는 확실할 겁니다. 문제는, 최근에 숨겨둔 유물을 등산객한테 들킬 뻔해서 위치를 바꾸었는데 그걸 무당분이 했거든요? 그분이 최근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디다 숨겼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럼 어떡해요?”

-어차피 물건 숨길 수 있는 곳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짐작 가는 곳을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때 발견된 유물 대부분은 시내에 있는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니, 여유가 되시면 보러 가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그곳의 무인상은 들고 있는 창을 적합한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몇백 년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이 있지요. 혹시 더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햄은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상호가 소곤거렸고, 재유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질문거리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이번에는 알아낸 게 많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내고… 박물관 있다는 것도 알아내고…. 그래도 뭐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이에요.”

상호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창틀에 팔을 데고 엎드린 재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뒤로 상호는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느니 희찬이한테 과자라도 뺏어다 주겠다느니 하며 종알거렸다. 후배가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거기 호응해 주고 싶은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질 않았다. 한없이 침전하는 기분만 들었다.

“어? 감독님 목소리다! 무사히 돌아오셨나 봐요. 진짜 다행이다.”

상호가 크게 안심한 기색을 내비치며 재유의 팔을 잡아당겼다. 재유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 현관은 1층밖에 없는데, 그들이 출입을 보지 못한 사람이 위층에 무슨 재주로 나타나겠는가? 이걸 똑똑한 상호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불쾌했다.

신호탄처럼 비명이 들렸다. 준수 햄!!! 태성의 목소리였다. 머리보다 빠르게 몸이 반응했다.

계단을 세 칸씩 뛰어 2층으로 올라갔다. 호환귀가 준수의 목덜미를 문 채로 방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에서 복도로 찍힌 피 묻은 발자국도, 골통이 깨진 채 쓰러져 있는 박교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뭘 쳐 봐! 당장 뛰어내려! 김다은, 저 새□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 준수는 그 상황에서도 방 안쪽을 향해 삿대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은 준수의 머리를 앞발로 누르고 어깨에서 살점 덩어리를 뜯어냈다.

재유는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상호를 발로 차 계단 아래로 굴려버리고, 손뼉을 쳐서 주의를 끌었다. 그것이 재유를 발견하고 살덩어리를 바닥에 뱉어냈다. 준수는 그를 발견하고 간절하게 팔을 뻗었지만, 팔은 곧 힘을 잃고 넓게 고인 검붉은 웅덩이로 첨벙거리며 떨어졌다.

그것이 느긋하게 일어나는 걸 신호로, 재유는 등을 돌려 체육관 방향으로 뛰었다. 찰방거리는 소리로 그게 따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직감이 알려주는 적절한 순간에 방향을 옆으로 급격하게 꺾었다. 그것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체육관 문으로 돌진했고, 문이 뜯겨나갔다. 재유는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호환귀는 문의 잔해에서 일어나 고개를 흔들더니 목표를 발견하고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재유는 그것을 평온하게 올려다봤다. 그것이 앞발을 휘둘렀다.

태성이 몸을 던져 재유를 밀쳤다. 몸이 체육관 바닥에 부딛힐 때마다 숨이 막혔다. 누군가 체육관에 불을 켰기 때문에 같이 엎어진 채로 재유를 끌어안고 펑펑 우는 태성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재유햄 오늘 하루 종일 왜 그래요? 저건 감독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준수햄은 죽, 죽었는데 재유 햄까지 왜 이러냐고요! 저는 어쩌라고요?”

재유는 일어나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야옹아~ 여기 봐라! 여기! 손에 꼬깃한 부적 두어 장을 쥔 지국민이 소리치며 호환귀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바지 주머니에 꽂힌 휴대폰에서는 반야심경 리믹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게 호환귀를 신경질 나게 한 것 같았다. 그것의 관심이 지국민에게 쏠린 사이, 훌쩍거리는 우수진이 체육관을 뒤지며 부적을 떼어냈다.

우수진이 재유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의 손바닥에는 신선한 피가 흥건히 묻어있어서 자꾸 미끄러졌다.

지국민은 청소년 국가대표를 괜히 한 게 아니라는 듯, 동물의 민첩성에 인간이 어지쩌찌 반응하고 있었지만, 이마에 벌써 땀이 맺히고 있었다.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재유는 상황에서 어떠한 가망도 보지 못했다.

그는 막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상호에게 질문했다.

“그때 내랑 니랑 같이 본 만화 기억나나? 너무 잔인하다고 내가 뭐라 했던 거. 그게 떠오른다면 니가 뭘 해야 할지도 알겠지. 날 내버려 둬라.”

태성이 재유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재유의 공허한 눈동자는 이제 반복을 알아 현재의 무용함을 아는 상호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도리어 상호는 가슴을 쫙 피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재유 햄이 애니를 잘 안 봐서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네요. 그런 만화에서는 수틀리면 죽어서 돌아가는 게 다가 아니라 회차를 거듭하며 정보를 모아 역전의 기반을 다지는 게 정석 전개라고요. 제가 그 쇠뇌, 찾아드릴게요. 살아있어 봐요.”

그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음에도 그렇게 말했다. 재유는 그제야 움직일 의욕이 생겼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재유는 우선 건물 주인이 보낸 문자를 상호에게 전달했다.

“니한테 문자 보내놨으니 확인해라. 그리고 자물쇠 주고 가고.”

“자물쇠요? 아. 맞다.”

상호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금방 알아듣고 바지 주머니에서 창고 방에 걸려 있던 자물쇠를 꺼내 건네주었다.

“너희들 그만 염□하고 움직여! 다친 애들 있단 말이야! 여기서 저거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고!”

“금마 말귀 꽤 잘 알아듣는데 그걸 말하면 어카노.”

“…그걸 왜 지금 말해.”

지국민이 입을 틀어막고 재유를 째려봤다. 그렇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재유는 자물쇠를 호환귀를 향해 던졌다. 그것은 앞발로 자물쇠를 쳐내려다 등을 아치처럼 구부리며 뛰어올랐다. 그 틈을 타 상호가 태성을 끌고 나갔다. 태성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기는 멀쩡하다 중얼거리며 버둥거렸다. 그렇지만 그가 입고 있는 밝은색 티셔츠는 피로 등판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호환귀가 적의를 재유에게 드러냈다.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다. 지국민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자물쇠를 주워 재유에게 던졌다. 재유는 받아서 자물쇠를 호환귀 면전에 들이밀었다. 그것이 위협적인 목 울림 소리를 내면서 털을 부풀렸다. 쟤는 참 담이 쎄…. 지국민이 질려하며 중얼거렸다. 호환귀가 재유 주변을 맴돌며 숨통을 끊을 기회를 노렸다. 고작 금속쪼가리를 담보로 하는 대치는 오래갈 수 없었다. 생각해야 했다. 어쨌든 여기는 코트 위고 그는 코트의 사령탑이라는 포인트 가드다. 그가 모든 수를 고려해서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서로 흩어져서 한 번에 죽는 걸 방지하고 호환귀를 혼란스럽게 해야 했다. 지시를 내리려 했을 때, 갑작스럽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발, 저거 뭐고?”

정희찬이었다. 막 체육관에 들어온 그가 호환귀를 보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희찬이가 무사했다는 안도감과 저 녀석이 여기 오면 안 된다는 절망감이 교차했다. 우수진이 철제 공 보관용 프레임을 밀고 와 재유를 물어뜯으려 하는 그것을 들이받았다. 호환귀는 비틀거렸으나 빠르게 균형을 회복했다. 재유는 그것이 우수진의 머리를 몸통과 분리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던졌다.

“우쭈쭈~ 이쪽 봐야지?”

희찬이는 혀 차는 소리를 내며 호환귀의 주의를 끌었다. 그 틈에 우수진이 자물쇠를 챙겨 그것과 거리를 벌렸다.

“다들 서로 거리 벌려라! 그리고 저거 계속 정신 사납게 하고. 각자 알아서 목숨 부지해라.”

재유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의문이 계속 주의를 사로잡았다. 도대체 정희찬이 여기 왜 온 거지?

“상호가 제가 필요한 데가 있으니 체육관으로 가라고 했어요. 이 정희찬, 뛰는 거라면 자신 있죠. 맡겨만 주세요!”

희찬이가 빗물에 젖은 앞머리를 털면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 태도, 웃음은 조금 전에 본 것이었다. 재유는 그제야 상호가 보여줬던 긍정적 태도의 출처를 깨달았다. 그리고 희찬은 상호와의 믿음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넷이 동서남북으로 거리를 벌리니 일단은 불안정한 평온이 찾아왔다.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대책이 떠오르지 않고 불안 요소만 산재해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지국민의 체력 고갈이었다.

그 점이 호환귀의 눈에도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벽을 발판 삼아 도움딛기했다.

“우수진, 자물쇠! 지국민한테 던져!”

우수진의 재유의 명령에 따라 자물쇠를 던졌다. 당황해서인지, 슛 에임이 안 좋아서인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희찬이가 몸을 날려 자물쇠를 받았다. 지국민이 호환귀에게 들이받혀 바닥에 처박혔다. 지국민은 어디에 머리를 잘못 부딪혔는지 사지가 움찔거리며 경련할 뿐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우수진이 울음을 터뜨리며 지국민에게 달려갔다.

“정희찬, 가만히 있어!”

재유는 달려가려는 희찬에게 지시를 내렸다. 깡마른 희찬이는 우수진을 제대로 붙잡고 있을 수 없을 터였다. 재유도 우수진을 힘으로 완벽히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이 조건에서 우수진을 말리는 건 한 명 죽고 끝날 걸 다른 한 명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재유는 팔꿈치로 가까운 유리창을 깨뜨렸다. 가장 길쭉한 파편을 집었다. 잡은 새 가지고 놀 듯 지국민을 툭툭 치고 노는 호환귀의 목을 노리고 유리 조각을 내리찍었다. 조각이 그것의 가죽을 스치자, 먼지알 같은 검은 입자가 튀었다. 팔에 묻는 질감이 마치 피 같았다. 송곳니 뾰족한 짐승의 아가리가 다가왔다. 왼쪽 팔뚝을 아가리에 끼워 넣었다. 깊은 물 속에서 일어나듯 덩어리가 솟아나 사람 상반신의 형체를 갖추더니 팔로 그것의 눈두덩이를 감쌌다. 하지만 덩어리는 이제 한 개뿐이었고 고작 잡귀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재유는 창귀를 관통해 호환귀의 눈을 찔렀다. 그것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이빨에 꿰뚫렸던 팔이 빠졌다. 팔에 큰 구멍이 두 개 패여 있었다. 팔목에 가까운 상처는 아예 구멍이 나 버린 건지 기형적으로 벌어진 팔뼈 사이로 체육관 바닥이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제정신이에요? 일단 지혈을 해야….”

희찬이는 재유의 팔에서 쏟아지는 피 양을 보고 패닉이 온 것처럼 허둥거렸다. 그는 자신의 뺨을 내리쳐 침착함을 되찾은 뒤, 빗물로 축축한 겉옷을 벗으려 했다.

“내한테서 떨어져!”

재유는 희찬이를 억지로 떠밀었다. 눈을 벅벅 긁어대던 호환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상해를 입힌 재유에게 복수할 터였다. 희찬이까지 험한 꼴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재유햄! 건물 뒤편으로 100미터, 거기서 보이는 떡갈나무 왼쪽으로 쭉 가다 보면 이상하게 비틀린 소나무랑 떡갈나무 사이에 평평한 돌이 있어요. 거기 아래! 거기 아래 파보면 돼요! 꼭 기억해요!”

비에 흠뻑 젖은 상호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는 원주인의 장대한 기골을 드러내듯 거대한 쇠뇌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상호가 해낸 것이다.

호환귀가 향해 사납게 포효했다. 그것의 흰자는 겪은 고통과 치욕을 드러내듯 유난히 붉고 번들거렸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것 이상을 재유에게 되갚아 주고 싶어 했다. 상호가 황급히 화살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쇠뇌에 메겼다. 희찬은 상호가 쇠뇌를 준비하는 동안 친구를 지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친구가 목표를 달성해 믿음을 지켰다는 충만감 때문인지 눈동자에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물에 젖어 미끈거리는 도구와 마찬가지인 손. 자세는 그럴싸했지만, 쇠뇌와 사람의 크기 비례가 미묘하게 어긋나 불안정해 보였다. 어쩌면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물건을 사용해서일지도 몰랐다. 문득 떠오르는 상식이 있었다. 칼을 다룰 때는 칼 진행 방향에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까닥하면 손을 베일 수 있으니까.

친한 친구를 쏘는 것보다는 학교 선배를 쏘는 게 나을 것이다. 재유는 희찬이를 힘껏 들이받았다. 퉁 하고 사위 우는 소리가 났다. 딱밤을 맞은 듯한 충격이 머리를 진탕했다. 이마를 뚫고 나온 화살촉에 멀건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곧 눈을 뜨고 있는데도 시야가 깜깜해졌다.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쓰러졌다. 누군가 그를 마구 흔들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노곤한 현기증이 의식을 흩어놓았다. 그 와중에 그가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 이건 없던 일이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