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재유에 빠지게 된 계기
이 얘기를 시작하려면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 나는 3년 동안 잡은 본진인 한국 달 회사가 화려하게 자폭한 후유증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반쯤 두문불출한 채 모 케모미미 모바일 게임 글을 끼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이 장르에서 쫓겨났으나 먼저 새 장르를 찾은 친한 트친이 내게 거래를 제시했다. 자신이 잡은 장르를 봐주면, 자신도 내가 보라고 하는 웹툰을 보겠다고 한 거였다. 그 웹툰이 ‘가비지타임’이었다. 웹툰은 재미있었고, 호감 가는 캐릭터도 생겼다. 웹툰을 갓 본 당시 내 트윗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진재유와 ‘밀가루처럼 희멀건 지상고 선배’였다. 그중에서 진재유가 더 괴롭힘직했기 때문에, 그대로 재유가 최애가 되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체 괴롭히고 싶은 거랑 최애잡이가 무슨 상관인데?’라는 타당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읽은 이가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할 만한 대답을 내놓기 어려운 질문인데, 그냥 내가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내게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그 캐릭터를 향한 잔인한 가학심과 비례한다. 재유는 참으로 괴롭히는 맛이 있는 캐릭터이다. 내향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주목받는 걸 썩 내켜 하지 않으며 얌전하다. 감정이 안으로 향하기 때문에 남에게 힘든 티 내지 않고, 고통을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하며 유능하기 그지없는 탑의 사령탑이자 에이스다. 이런 캐릭터는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을 줘서 정신과 몸을 망가뜨리고픈 욕구가 들게 한다. 남에게 자신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 고립적인 성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유에서 우러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진, 따듯하고 강인한 마음을 소유한 캐릭터에게 잔인한 시련을 주고, 그 캐릭터의 심신이 비가역적으로 망가질지언정 끝끝내 고난을 이겨내는 걸 보고 싶다. 아마 서브컬쳐의 심연을 엿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천박한 두 글자 단어를 빙빙 돌려 말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 순수한 머릿속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길 빈다. 비꼬는 게 아니고 진심이다.
그렇게 최애를 잡고 나니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갑타의 너무 건전하고 버석한 양기가 나를 말려 죽이고 있었다. 내 정신이 영혼의 갈증을 달랠 수 있는 잔인하고 음울한 연성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이전에 배구!!! 장르를 오래 판 적도 있었기에 스포츠물을 파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배구!!!에서 엄청난 필력을 지닌 글러들이 빚어낸 천재적인 소설들은 내 유전자에 새겨진 비틀린 취향을 일깨워 내 2차 연성 취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그들이 동인 창작의 황금기가 끝남과 함께 뿔뿔이 흩어져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갑타라는 대메이져 장르에 와서도 나는 팬픽 사이트를 뒤지며 깨달았다. 이번에도 내가 보고 싶은 건 내가 쓰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나는 가비지타임 연성을 하게 되었고, 가비지타임을 장르로서 잡게 되었다.
2. 좋아하는 명대사/명장면
나는 윤경택 감독의 ‘숫자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대사를 제일 좋아한다. 재유의 잠재력뿐만 아니라 지상고등학교의 가능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서술이기 때문이다.
수치로 본 재유는 어떤 캐릭터인가? 일단 175cm라는 키. 농구 선수로서 작은 키고, 대한민국 평균을 따져도 딱 그 중간에 걸친 키이다. 누구나 농구는 키가 중요한 스포츠라는 걸 안다. 그는 농구를 사랑하지만, 태생부터 농구에 어울리지 않는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가 농구를 못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기실 그는 반쯤 서사의 필요성에 의해 유능해진, 도구적인 캐릭터이다. 그렇지만 그의 능력은 몰개연성보다 개연성의 영역에 치우쳐 있다. 가비지타임은 진재유의 능력에 두 가지 개연성을 준다. 재능과 노력이다. 내가 보는 재유의 제일 큰 재능은 판단 능력이다. 연속된 패배로 무력감을 학습했고, 에이스에게 몰아주는 플레이를 폭력적으로 강요당해서 자신이 나서면 안 된다는 점을 강제로 주입 당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그렇다고 농구 제대로 하지도 않는 1학년들이 옵션이 되어줄 수는 없다. 이 답 없는 무능력자만 모인 팀에서 그나마 자신이 제일 멀쩡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으면서도 내가 제일 나으니 내가 알아서 다 해야 한다는 비틀린 독선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이현성의 믿음으로 능력을 개화한다. 순수한 건 아니고, 되면 장땡이라는 불순한 의도였지만 어쨌든 그는 어른의 신뢰를 통해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시도한다. 자신의 키가 엄청난 페널티임을 알면서도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이 일제히 빛을 발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재유가 승대에게 너랑 하는 농구도 재미있었다고 한 발언을 좋아한다. 왜냐면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 가비지타임의 메시지를 드러나는 대사이며 진재유의 탁월한 사람 이해 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정말 기가 막힌 발언이다. 보통 저런 상황에서 상식적인 대답은 네가 가서 아쉬웠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반응 해 봤자, 승대는 쇠귀에 경 읽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도 없는 말 한다고 땅 파고 들어갈 거다.
재유는 거기서 돌직구를 던진다. 네가 가서 내가 떴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너랑 하는 농구도 재미있었다고 하며 승대를 죄책감과 억하심정, 그 밖의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또한 이것은 재유의 자기 긍정이다. 감독자의 편의와 이익에 따라 가능성을 가지치기 당했지만, 에이스에게 볼 날라 주는 셔틀로만 살았던 시절이 지금의 진재유를 만들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좀 많이 소심하고, 손기술이 좋은 진재유는 없다. 키가 페널티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질투하면서도 농구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농신 진재유가 있다.
그밖에도 나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자질에 준수의 전국 상위 1% 깡다구와 상호의 소름끼치는 관찰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글은 진재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이만 생략하겠다.
3. 진재유 서사에 있어서 ‘용기’란?
나는 진재유에게 있어 용기란 확신이 없고 불안해도 지르고 보는 것, 즉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한다.
진재유는 좋게 말하면 생각이 깊고 나쁘게 말하면 좀 소심하다. 내향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게 고쳐야 할 성격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특히 그 나이대 남자 고등학생은 허파에 바람 좀 빼고,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재유의 경우에는 농구에 있어서 그 상태를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진재유는 분명 재능을 타고났다. 그렇지만 그는 그 재능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속된 패배와 교육진의 체벌-나는 이게 학대라 생각한다-은 그의 어떤 부분을 꺾어놓고, 새장 안에 가둬놓기에는 충분했다. 지속적인 실패는 그가 제일 안전한 선택, 맨날 했던 선택만 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두렵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실패는 자원을 소모한다. 제일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건 인간 진화의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호기심과 저항 정신 또한 타고났다. 변혁의 씨앗 말이다. 하던 것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안 하던 시도도 해 봐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다행히 재유는 어른 이현성의 신뢰를 통해 그 가능성을 개화해 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성과는 고스란히 자기 확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얌전하다. 과감할 때 과감할 수 있으면 됐지, 근본적인 성격까지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4. 내가 생각하는 진재유 매력포인트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은 재유는 매력 요소가 많은 캐릭터라는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호감을 느끼는 요소를 꼽아보고자 한다.
우선 외모에 대해 논해 보자. 객관적으로 진재유는 미형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매력은 외모와 연관이 있을지언정 정비례하지는 않는 법이며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 큰 편인 눈, 둥근 두상으로 빚어지는, 언뜻 동그래 보이는 얼굴형. 하지만 잘 뜯어보면 살갗이 얇아서인지 도드라지는 안와 뼈 윤곽이 메마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거기에 주근깨가 있어 어릴 때 꽤나 천방지축으로 놀이터와 골목을 쏘다녔을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짙은 눈썹이 인상을 강조한다. 이렇게 재유는 미남이나 미인은 아닐지언정 그렇기 때문에 외모에서부터 마니아층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재유에게는 슬픈 소식이겠지만 그 마니아 중에는 나도 있었다.
이제부터 진재유 성격의 어떤 점이 매혹적인지 설명할 것인데, 십중팔구 그가 얼마나 괴롭힘직한 캐릭터인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자빠지는 괴랄한 취향 성토의 장이 될 것이다. 만약 손에 돌을 들고 있다면 잠시만 내려놓고 구전으로나 들었을 엽기적인 취향의 오타쿠가 제 이상한 성향을 구구절절 떠드는 걸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해 주길 바란다.
내가 재유에게 가학심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내향적이고, 사유할 줄 알며 판단 능력이 뛰어난 데다 근본적으로 강인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재유는 인간 전반한테 큰 관심이 없고 무심한 사람이다. 대신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다. 또한 생각과 감정이 자기 안으로 흐른다. 이 내향성은 사유로 이어져 다양한 생각을 하지만 그건 머릿속에만 국한될 뿐 두개골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애’가 된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재유가 대인관계용 배터리 용량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 내적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뛰어난 판단 능력이 더해진다. 판단하는 데는 정보가 필요하고, 그 복잡한 코드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려면 매 순간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들어오는 정보값도 많으며, 정보 처리기 자체의 성능도 높다. 쌩쌩 돌아가는 고성능 컴퓨터는 냉각기가 돌아가는데도 CPU가 늘 뜨근한 법.
팬들은 재유는 작품 외적이든 내적이든 얘는 알아서 잘한다고 방치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재유가 그 방치 및 방임 상태를 달가워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접촉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마련이다.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으면 혼자 알아서 하면 된다. 이런 면에서 재유는 수동적인 성향이 있다. 먼저 건드는 건 나를 필요로 하는 애, 그리고 내가 챙겨주고 싶은 애면 된다. 무심하면서 다정해서 내 일은 참고 넘겨도 내 친구 일에는 화를 낸다.
나는 이 일렬의 요소들에 가학심을 느낀다. 고립적인 캐릭터를 완전히 고립시켜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 아이솔 마크가 트레이드 마크인 캐릭터에게 모든 걸 혼자 짊어지게 만들어 망가뜨리고 싶다. 소중한 친구를 없애서 완전히 혼자로 만들어버리고 싶으며, 친구를 챙기며 안정감 찾은 애한테 애착 인간을 제거하고 싶다.
왜 전쟁터의 장군에게 훈장으로 공훈을 치하하는지 아는가? 왜냐면 그들에게 그간의 죽음을 정당화할 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훈장은 그들이 전쟁에서 내린 판단으로 인한 희생이 그들 잘못이 아니라는 증거다. 진재유는 팀의 사령탑이다. 그의 판단에 팀의 승리가 달려 있다. 이런 중압감을 가지고 있는 애를 사람 목숨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밀어 넣어 스트레스로 망가져 가는 게 보고싶다.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서 매 순간 정보 받아들이느라 과부하 걸리게 하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과 역경이 있어도,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게 손상될지라도 끝내 목표를 이뤄내는 게 보고 싶다. 그에게 대의를 부여해 짓눌리더라도 기어코 의지를 실천하길 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하는 것, 이게 그가 지닌 강인한 마음이다.
글이 두루뭉술한 점, 양해 부탁한다. 내가 그를 어떤 식으로 괴롭히고 싶은지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게 되면, 연성 한 편 하는 수준으로 분량이 늘어날 건 둘째치고, 교류회의 전연령가 규칙을 어기게 된다. 여러분도 그 정도의 심연은 보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무엇보다 글을 검수해야 하는 주최님은 무슨 죄란 말인가.
5. 진재유를 지금껏 덕질하며 돌아본 나의 감회
지금까지 제법 긴 글 읽느라 고생했을 독자들을 위해, 또 두 가지의 추가 질문의 추진력을 위해 짧게 끝내고자 한다. 절대로 할 말이 딱히 없어서는 맞다.
아무튼. 나는 2차 연성을 하게 되면 그 장르를 잡았다고 본다. 밑의 질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나는 추리물과 괴담과 미스터리, 코즈믹 호러 등등의 장르를 연성으로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장르-오타쿠 용어로서의 장르가 아니다.-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어딜 가도 해주는 사람은 없는데, 직접 써 보면 어마무시하게 나오는 분량은 둘째치고 머리가 아파서 왜 쓰는 사람이 없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갑타로 저 장르들 글을 쓰고 있거나 쓸 예정이다. 아직 재유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남았다. 연성들이 논컾이거나 씨피가 자유분방해서 씨피 온리전을 못 가기 때문에 이 글들을 낼 통합 온리전도 기다리고 있다. 이미 30만자를 훨씬 넘게 썼건만 앞으로도 징글징글하게 더 쓸 예정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앞으로도 같은 장르 오래 쓸 텐데 잘 부탁한다.
6. 진재유 동물 모에화
나는 그 무엇보다 용이 진재유 동물화에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용과 드래곤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취향이 평범하다고 믿어왔다. 누구나 용이라는 멋진 존재에 대한 호감을 품고 살아가지 않던가?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이 이 착각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준 덕에 이 애정이 상궤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이 글을 읽는 몇몇 또한 무작정 좋아하는 동물을 좋아하는 캐릭터에 빗댈 뿐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재유는 그 어떤 동물보다 용과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용이란 무엇인가? 용은 뱀, 도마뱀, 물고기 따위의 미물이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오랜 시간 덕을 쌓으면 될 수 있는 신령한 동물이자 날씨를 관장하고 물을 다스리는 농경사회의 신, 왕권과 어진 임금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이무기가 고된 수련을 통해 여의주를 얻거나, 잉어가 폭포를 뛰어오르거나, 하늘로 승천하는 등 용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이 때문에 용은 판타지 작품에서 강력한 종족 내지는 신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용의 핵심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미물도 도를 깨치고 도를 갈고닦는다면 용이 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위대해질 수 있다. 이 점이 재유와 어울리지 않는가? 농구에 있어 키가 작다는 치명적인 페널티를 지니고 있지만, 단점을 정교한 기술과 뛰어난 판단력을 갈고닦아 보완했다. 최종적으로 재능을 개화해 내 쌍용기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용이 아무리 인간에게 친근한 신수라 해도 홀로 살아가는 인외 종족이다. 단독 생활함은 사회성이 없으며, 동족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월적인 인외 종족이라는 것은 존재만으로 두려움을 사며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재유는 일정 정도 고립을 자처한다. 관심받는 걸 달가워하지 않고 외로움을 잘 타지도 않는 성싶다. 생각이 깊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속에서 소화하기 때문에 정작 밖에서 그가 뭘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마치 깊은 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람에 대한 미적지근한 무관심,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함이 지극히 인외같지 않은가?
이게 내 주장의 전부이다. 마지막으로 자꾸 불미스러운 오해를 사곤 해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려고 한다. 내 용에 대한 애정은 용의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멋에서 비롯된 것이지, 이종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다. 여태까지 추접한 취향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놓고 덧붙이기에는 너무 늦은 해명이긴 하나, 내가 고어충(蟲)인건 사실이지만 용박이는 아니라는 점, 명심해주길 바란다.
7. 재유로 하고 싶은 AU
AU는 Another Universe의 약어로 원작과 다른 if를 가정하는 용어기도 하고, 오메가버스, 센티넬버스 에유처럼 아예 다른 세계관으로 보내버리는 용어기도 하다. 또한 특정 장르로 캐릭터를 이식하는 등 서브컬쳐에서 에유는 광범위한 개념을 내포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에유를 하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 에유에서 그 사람의 핵심적인 취향을 구성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자리에서 내가 어떤 에유를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추리물, 괴담, 미스터리, 스릴러, 크툴루 신화 등등의 에유를 매우 좋아하고, 재유도 이러한 에유에 집어넣고 싶어한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해보려고 한다.
세련된 다이어리보다 싸구려 갱지에 인쇄될 법한 내 문체를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유년기 때부터 추리소설에 매료되었다. 추리소설은 용과 캐릭터에 대한 가학심처럼 내 DNA에 각인된 근본적인 취향에 속하지는 않을지언정 소설에서 묘사하는 논리적 문제 해결과 짜릿한 살인, 폭력은 어린 내가 어느 때나 즐길 수 있는 오락이었다. 어른들은 게임을 터부시하고 독서를 신봉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였다면 나는 2차 연성으로 추리물을 말아먹겠다는 포부를 지닌, 간이 땡땡 부은 오타쿠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바라진 취향을 가지게 된 데에는 배구!!! 만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전성기의 배구!!! 장르는 연성이 쏟아지는 화수분이었다. 얼마나 연성이 많았냐면, 픽시브에서 연재되던 2ch 스레 형식 괴담이 번역되어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오고, 각종 괴담, 배틀로얄 에유 회지가 나왔으며 심지어 미스터리 스릴러 선택지 소설이 트위터에서 연재되었다. 이런 연성들은 오직 규모의 법칙에 따라 생겨나는 독특한 취향의 연성러만이 빚어낼 수 있는 종류였다. 나는 이 연성들을 계기로 좋아하는 것들끼리 합쳐질 때의 즐거움에 눈떴다. 연성을 읽으면서 즐거움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려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이 재미를 내가 구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어느 장르를 가든 연성을 해야 하는 저주에 걸리게 되었다.
그래서 왜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 에유에 재유를 집어넣고 싶냐면, 기본적으로 그가 명석하기 때문이다. 무릇 탐정에게는 논리의 도약이 있어야 한다. 뇌 안에서 퍼즐들 다 짜맞춘 다음 결과만 도출해놓기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풀이하는 게 추리소설 클라이막스의 추리쇼이고 탐정의 비범함이자 추리소설의 본질이다. 이걸 구사하는 진재유가 보고 싶다. 너무 지혜로워 살짝 사회에 부적응해버린 진재유, 불가항력적으로 폭력에 휘말려 버리는 진재유 말이다.
이제 크툴루 신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괴담은 잘 알기도 하고, 크툴루 신화 에유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해서 지면상의 이유로 생략하겠다.
크툴루 신화는 어거스트 덜레스가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을 기반으로 만든 세계관이다. 러브크래프는 낯선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으며, 그의 유약한 정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허무, 과학의 발전으로 밝혀지는 사실에서 오는 공허를 그대로 흡수했다. 그러므로 그는 엄청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이 소수자 혐오적인 정서는 고스란히 크툴루 신화에 녹아 있다. 지구의 음지에 도사리는 모독적인 악신을 섬기는 이도교,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우주적 진실, 인간을 한낱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 만드는 무정한 우주와 별들! 한없이 작은 만물의 영장, 필연적인 파멸과 무의미한 저항. 이것이 코즈믹 호러이다. 이것이 크툴루 신화이다!
아, 광기, 우리들의 오랜 벗이여. 좋아하는 게임인 다키트스 던전의 대사이다. 나는 크툴루 신화의 광기를 좋아한다. 신화적 존재들을 목도하기만 해도 찢겨나가는 인간의 정신, 우주가 어두운 밤하늘 속에 감춰둔 잔인한 진실의 편린을 깨닫기만 해도 붕괴하는 알량한 자아! 필연적인 파멸 앞에서 무지는 얼마나 따뜻한가? 계속 강조했지만 재유는 팀의 사령탑이다. 판단을 내리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그는 정보를 조립해 누구보다 빠르게 순진한 무지의 막을 찢고 우주적 진실을 깨달을 것이다. 합리의 영역에 있던 판단력이 혼돈과 광기의 영역으로 치닫는 게 보고 싶다. 그에게 조용한 광기가 누구보다 빨리 깃들기를 원한다. 예로부터 지혜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아니던가? 그리고 불손한 이야기도 하자면 신체의 손상은 정신의 파괴를 야기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게 광기는 일석이조라는 소리다.
역설적으로 추리물과 크툴루 신화에서 빛나는 건 인간에 대한 희망이다. 추리물에서는 어떻게 되었든 진실은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상처 회복의 시작이다. 비극을 과거의 사건으로 남겨놓을 수 있게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다. 크툴루 신화에서는 감히 인간 나부랭이가 대적할 수 없는 존재와 대적해야 해도, 세상 이면의 진실이 잔혹해도, 죽거나 미칠지라도 종말을 유예하기 위해 기꺼이 계란으로 바위를 내려치는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재유는 일상이 파괴되고, 위기가 닥치면 자신 안의 두려움을 정확히 인지해서 자신을 비겁한 겁쟁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재유가 올곧은 인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8. 마지막으로
이렇게 내 장광설은 끝이 났다. 이제는 손에 들고 있는 돌을 던져도 된다. 하지만 딱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동양의 미덕은 음양의 조화이다. 즉, 건전한 원작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2차를 해 균형을 맞춰야 하는 법이다. 나는 열심히 세상의 조화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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